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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
김시업 관장 "실학은 르네상스 운동, 신문명 동력될 것"[박명기 굿모닝] 실학박물관 김시업 관장
박명기 기자  |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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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02  11: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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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업 관장 "실학은 르네상스 운동, 신문명 동력될 것"

[박명기 굿모닝] 실학박물관 김시업 관장

남양주시 조안면으로 간다. 물 좋고 산 좋고 뜰 좋은 청정지역이다. 지난해 수도권 최초로 ‘슬로시티’에 선정된 곳이다. 자연 속에서 전통적인 음식과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국제적 인증을 받았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농약도 비료도 함부로 못쓰다 보니 ‘유기농의 메카’가 되었다.

30년 전 대학시 절로 돌아간다. 다산(茶山)을 찾아 벗들과 우르르 몰려갔었다. 호젓한 경춘선을 따라 내린 능내역. 철길 위에서 나란히 사진을 찍었던 그때의 벗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의 더깨를 툴툴 털어내자 다산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이 눈에 들어온다. 조안면 능내리. 18년간 강진 유배 중 정치 경제 역리 철학 등 무려 500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대사상가 정약용의 고향집이다.

다산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실학박물관에 간다. 정년퇴임해 실학박물관장이 된 김시업(68) 교수. 학창시절 기자의 스승이자 2대 박물관장이다. 개관 반년 후 취임해 1년 반, 안동 양반가 출신답게 강단에서 꼿꼿했던 선비의 모습, 강직한 말투는 여일(如一)하다. 스승이 아닌 지자체 산하 기관장으로 아슬아슬한 첫 대면. 황송하게도 스승이 직접 전시실을 안내하고 설명한다. 마구 질문의 화살을 쏘아대는 제자의 무례도 살짝 눈감아주었다.  

   
▲ 김시업 실학박물관장

■ 실학 집대성한 다산 생가 앞 ‘실학박물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고향인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이 태어나 자랐고, 묻힌 곳이다. 여유당 안쪽 건너편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김시업 관장에게 물었다. 박물관이 왜 하필 이곳에 세워졌느냐고.

김 관장은 “다산 유적지인 이곳 마재(馬峴, 말티)는 지금은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지만 조선시대엔 광주땅이었다. 광주는 근기실학·경세치용파 실학의 고장이다.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등 17C 후반~18C에 형성된 성호학파의 본향이면서, 18C 서울 중심 이용후생파의 정신과 사상을 회합하여 19C초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의 고장”이라고 장소의 의미를 강조했다.

2004년 첫 준비를 시작한 실학박물관이 개관까지 걸린 시간은 4~5년. ‘성호사설’을 쓴 안산도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성호박물관이 이미 있어 다산의 고향에 세우게 되었다.

21세기에 실학(實學)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김 관장의 답은 명쾌했다. 금세 학창시절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조선 후기의 실학은 일종의 르네상스 운동이었다. 실학에서 과학으로 나아가는 문명 지향의 신문명의식이라고 보면 된다. 국가 기구나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벼슬길을 마다한 몇몇 선비학자들이 헐벗은 민중을 위해 제도개혁과 실용적 방안을 연구했다. 실학자들은 학문을 통해 결국 현실과 거리가 먼 제도를 개혁하고, 성리학의 관념성을 거부했다. 지식의 생활화·대중화를 추구했다”며 “지금은 신분계급이 없으니 선비 지식인이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실사구시의 정신, 과학적 실용정신을 닦고, ‘열린 자아’를 추구하여 ‘자아의 세계화’, ‘세계성의 획득’을 통해 21세기 신문명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 역사적 동력이 실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학은 조선 후기 근기(近畿)지방에 등장한 한국 유학의 새로운 학풍이다. 실학은 일상생활의 쓰임, 조선의 역사, 언어, 지리를 연구한 학문이다.

제1전시실 모니터 앞에서 김 관장은 “실학의 탄생을 놓고 서양 문물의 전래가 낳은 외래요인이라는 측과 조선 후기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체 내 개혁요구가 담겼다는 내재론 등 입장이 갈렸다. 하지만 실학의 발생 배경엔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말했다.

   
▲ 김시업 관장과 혼천의
 ■ 고문서, 책 위주 전시물에서 뭘 느끼냐고?

실학박물관을 찾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할까. 김 관장은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유물이 대부분 전적류(典籍類)다. 실학자들의 가장본(家臟本, 집에서 보관하던 책)이나 친필, 고문서 위주다”며 “학술이나 정신, 취지 등이 실학의 본류라서 그럴 게다. 하지만 제1전시실 ‘실학의 형성’, 제2전시실 ‘실학의 전개’, 제3전시실 ‘천문과 지리’ 등 상설 전시와 1층 로비 옆 특별전시실을 체험해보면 실학이 뭔지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실학은 조선 후기 근기(近畿)지방에 등장한 한국 유학의 새로운 학풍이다. 실학은 일상생활의 쓰임, 조선의 역사, 언어, 지리를 연구한 학문이다.

제1전시실 모니터 앞에서 김 관장은 “실학의 탄생을 놓고 서양 문물의 전래가 낳은 외래요인이라는 측과 조선 후기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체 내 개혁요구가 담겼다는 내재론 등 입장이 갈렸다. 하지만 실학의 발생 배경엔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 전시실은 반계 유형원 등에 의해 시발된 실학의 발생기로부터 경세치용파(이익, 정약용)-이용후생파(박지원, 박제가)-실사구시파(김정희, 박규수)로 이어진다. 중농주의-중상학-실증주의의 계보다. 다산의 경우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이론과 실천인 실학 전체를 회합한 집대성자였다. 근대로의 가교로 실학으로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샤먼호 사건시 평안감사로 관료로서는 처음으로 개국통상을 주창했다. 박규수의 제자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박영효다.

 ■ “중앙사무관 5급 교육 마치면 참배옵니다”

전시실 안내 중 김 관장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곳은 역시 다산 앞이었다.

그는 “다산이 쓴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목민관이 마음에 새겨야 할 지침이자 매뉴얼이다. 그의 또다른 책 ‘경세유표’(經世遺表)는 새로운 국가체계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에 관한 저서다. 현실개선책과 이상주의를 다 가진 다산은 개혁군주인 정조를 통해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지만, 권력을 잡지도 꿈을 꾸지도 못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80평생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목민심서는 300여년 세월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공무원들의 지침서다. 기자가 민선 5기 지자체장 릴레이 인터뷰에서 공무원상에 대해 물을 때 열에 아홉은 다산의 목민심서를 인용했다. 김 관장이 들려준 귀에 번쩍 뜨이는 이야기 하나. 그는 “목민심서가 공무원 지침서 아닌가. 요즘 공무원 중앙사무관 5급 교육이 끝나면 국립묘지와 함께 실학박물관에 참배하러 온다”라고 귀띔했다.    

 

실학박물관을 100배로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김 관장은 “주말이나 화창한 날 나들이객이 많을 때 오면 마재마을 풍광과 다산유적지를 즐기고 나서 실학박물관을 대충 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주중이나 비오는 날 가족과 함께 와서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영상도 체험하는, 천천히 보시는 방법, 이것이 몇 배의 의미와 느낌을 더해 주리라 생각된다. 북라운지·테라스·체험코너 등을 활용하다 보면 실학이 절로 학술로 느끼게 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 성호는 왜 소똥구리를 관찰했나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40년간 메모를 했다. 이것을 모아 만물문을 집필했다.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걸 실제 관찰하고 실험하고 검증해 세상만물을 새로 보기 위해서였다.
 

   
▲ 실학박물관 전경
요즘 1층 로비 옆 특별전시실의 기획전시는 ‘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 세상 만물보기’다. 학교에서 듣고 배운 ‘실학’을 보고 느낄 수 있게 쉽게 설명하고 정리한 것. 방학을 맞아 아이와 어른 등 온 가족이 보고 체험해볼 만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김 관장은 “사설이란 백과사전을 말한다. 성리학과 예론 중심이던 학문을 보고 관찰하여 지식대중화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며 “성호는 의식 음식 생활도구 동물 식물 곤충 민간신앙 등 단순한 호기심 충족이 아니라 실사구시 정신을 실현했다. 참과 진리,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관장의 설명대로라면 만물학은 거룩한 책이 아니다. 소똥구리 이야기다. 소똥에서 소똥구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식량을 저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놀라운 건 성호사설이 나온 연대가 서양에서 백과사전이 만들어지는 볼테르의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김관장은 “사설에 따르면 당시 안산 바닷가에 게가 18종이 있었다. 그런데 10종이 멸종되었다. 또 일식을 임금정치의 잘못으로 봤던 당시의 정서와는 달리 과학으로, 자연현상으로 보았다”며 설명했다.

실학박물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청소년 실학교실’ ‘다도체험’ 등의 수십 가지의 체험 및 강의도 활발하다. 방학이면 대학생들의 실학기행과 일반인 전문인의 유적지 탐방, 인근 산행과 관광을 온 가족들의 방문도 줄을 잇는다. 일본에서 드라마 ‘이산’이 NHK에서 방송된 이후 수원행궁과 연계해 다산 유적지까지 찾아오는 일본인들도 늘었다.

그는 “버스노선이 대성리에서 유적지까지 지방버스로 50분에 1대가 다녀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지난해 16만 명이 다녀갔다”고 말하며 웃었다.   

■ 다산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인연
김시업 관장과 다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다. 그의 스승은 다산연구회 창립멤버이자 재단법인 ‘실사학사’ 이사장인 이우성씨다. 창립멤버 13명 중 6명이 해직교수였다. 강만길, 정창렬, 김진균, 이만열 등 내로라하는 석학들이었고, 민주화운동의 숨은 주역이었다.

하지만 다산연구의 진짜 중심은 고전문학 전공자들이었다. 이우성 이사장을 비롯, 송재소 임형택 김시업 교수 등 국문학의 고전문학 전공자들이 실학을 더 많이 연구했다. 평생을 교수였던 그에게 박물관장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다산 정약용 생가 여유당.
그는 “교수는 자기 전공분야의 연구와 강의가 본업이다. 실학박물관의 경우 전시·교육·연구의 세 분야가 유기적으로 맞물린다”며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일이 전시와 교육이다.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초등학교 아이부터 어른·교사·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식을 추진 중이다. 행정당국과의 관계와 업무도 중요한데 아무래도 좀 서툴다. 대학에서 퇴직한 지금 새로운 보람을 느낀다.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내년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태어난 지 딱 250주년이 되는 해다. 김 관장은 다산 탄생 250주년을 위한 청사진을 공개했다. "실학박물관이 경기도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전국에 확산될 수 있는 노력을 주도적으로 펼치겠다"며 "전국에 있는 많은 다산관련 단체를 하나로 묶어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학박물관 1층에 있는 관장실 방은 영락없이 학창시절 보았던 교수님 연구실이다. 코딱지 만한 방에 빼곡이 책이 꽂힌 책장이 벽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책상에는 청자 도자기 화병 하나가 놓였다. 다른 벽에는 ‘우주와 세상을 실학의 눈으로 보라’는 전시소개 패널이 있다. 다탁 위에도 佳茗一碗(가명일완)이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 천이 놓여있다. 다산연구소에서 주었다는 ‘좋은 차 한 잔’이라는 뜻이다. 역시 다산의 정신적 후예다웠다.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성균관대 국어국문과에서 학사와 석ㆍ박사 학위를 마쳤다. 이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중화민국 국립정치대학 교환교수,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원장 및 같은 대학 동아시아학술원 부원장,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한문학과 미학'(한국한문학회. 2003) 등 조선시대 문학과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일간경기 박명기 기자 201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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