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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민 기자의 깨톡] 게임폐인 없앤 자동사냥, 웃프다혁신과 비호감 사이, 애증의 자동사냥 "재주는 내가 넘고, 게임은 컴퓨터가 하고"
서동민 기자  |  cromdan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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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15  06: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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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버스 뒷좌석에 앉은 청년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꼭 쥔 채로. 이따금 게슴츠레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이내 도로 눈을 감는다. 그는 지금 자동사냥 시스템을 켜놓고 모바일 RPG를 하고 있다. 주인이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을 하는 동안, 화면 속 아바타는 몬스터와 사투를 벌인다.

 

   
 

기자들의 두뇌가 가장 바쁘게 활동하는 간담회 현장. 테이블 위 일렬로 줄지어선 노트북 사이에 번쩍번쩍 이펙트를 발산하는 스마트폰이 눈에 띈다. 아니나다를까 자동사냥 모바일 RPG다. 주인이 바쁘게 기사를 쓰는 와중에도 아바타의 사냥은 끊이질 않는다.

2013년 ‘몬스터길들이기’로 시작된 자동사냥 시스템은 어느새 한국 모바일 RPG를 뒤덮었다.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던 유저들도 이젠 자연스레 자동사냥 시스템을 받아들인다. 도리어 자동사냥이 없는 RPG는 성공이 힘들 정도로 필수 요소가 됐다. 현재 매출 상위권을 차지한 게임들 대부분이 자동사냥 시스템을 탑재했다.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하는 트렌드가 됐다.

물론 아직까지 거부감은 존재한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누군가가 자동사냥 일색인 모바일 RPG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다. 컴퓨터가 사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왜 재미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소위 ‘취존’(취향 존중의 준말)이 불문율인 서브컬처 세계 특성상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은 적지만, 말없이 추천수가 불어나는 것만 봐도 자동사냥 부적응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자동사냥이 전통적인 RPG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군의 방패가 되어 줄 탱커, 적의 명치에 비수를 꽂아 넣을 딜러, 후방에서 아군을 치료하는 힐러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이 RPG다. 그러나 자동사냥 RPG에 이렇게 다양한 역할은 없다. 오직 명령하고 지켜보는 매니저와 감독 역할만 있을 뿐이다. 육성, 경영시뮬레이션게임과의 차이가 모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사냥이 위대하고 혁신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어느 RPG도 해결하지 못했던, 헤비유저와 라이트유저 사이의 간극을 일거에 없앴다. 시간이 없어서 게임을 못하는, 주변인으로 맴돌기만 하는 라이트유저는 더 이상 없다. 과거 헤비유저들의 전유물이었던 최상위 콘텐츠도 이제 모두가 누릴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계급이 없어진 것이다. 다 자동사냥 덕분이다. 물론 과금유저와 무과금유저라는 또다른 계급은 그대로지만.

소위 게임 폐인들도 없어졌다. 이제 하루에 열댓시간씩 RPG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 자동사냥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일하고, 밥먹고, 잠자는 시간에도 자동사냥은 묵묵히 ‘열 일’을 한다. 폐인의 자리를 ‘폐컴’이 꿰찼다. 합법적이고 믿을만한 ‘부주’다. 자동사냥에 맛을 들이고 나면 그 매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자동사냥은 RPG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유저의 삶이 그만큼 여유로워졌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공상과학소설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서 일하고 인간은 여유롭고 풍족한 삶을 누린다. 유년시절에 상상한 지금의 나는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나는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동사냥 시스템이 나 대신 유유자적 게임을 즐기고 있다. 뭔가 웃프다.

 

   
 

최근 들어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2020년 고속도로 무인시스템인 스마트톨링이 구축되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7233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비슷한 시기에 무인자동차 상용화를 앞둔 택시기사들과 트럭기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자들도 위태로운 직업 목록 최우선 순위에 올라 있다. 이미 LA타임즈나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로봇을 통해 실시간으로 단신기사를 내보내고 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독자들 대부분이 인간과 로봇이 작성한 기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는 일도 로봇이 하고, 게임도 로봇이 할 판이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하나? 갈 곳을 잃은 기분이다. 가끔은 자동사냥 없이 지루한 던전을 손수 반복해야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게임톡 서동민 기자 cromdan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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