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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화투서 슈퍼마리오까지, 콘텐츠제국 닌텐도게임별곡 시즌2 [1회 상] 23세에 사장 취임 히로시-슈퍼마리오 만든 시게루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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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1  08: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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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포털. 닌텐도 홈페이지]

게임별곡 시즌2 [1회 상] 닌텐도 전설 주역, 23세 사장 히로시-마리오 만든 시게루

■ ‘역사와 전통’이라는 말을 진짜로 쓸 수 있는 기업

1889년이라는 시기는 단순히 숫자로만 갈음하기에는 많은 의미를 지닌 숫자다. 한국의 근 현대사를 논하기에 앞서 중요한 숫자 중에 하나인 1876년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맺고 일본의 식민주의적 침략의 시발점이 되었던 치욕과 울분의 시기다.

1889년에 중국은 아직 ‘청(淸)나라’라 불리던 시절이고 한국은 아직 ‘조선(朝鮮)’이라 불리며 8년이 지난 1897년에서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革命)’으로 자치적인 국권수호 운동을 벌이던 명칭으로만 듣기에도 까마득히 먼 옛날 이야기 같은 시절이다.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바로 그런 시절에 창립되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부터 얘기 할 ‘닌텐도’ 라는 회사다. 그 시기에 조선의 국왕은 황제가 되고 아직까지는 황제나 조선, 청나라 같은 먼 옛날 얘기 같은 것들이 존재하던 시기에 창업한 회사다.

   
[빨간색의 닌텐도 (세가는 파란색)]

닌텐도는 이미 창업 100주년을 훨씬 넘은 전설에나 나올 것 같은 업력의 회사 중에 하나다. 창립 시기에는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 にんてんどうこっぱい 임천당 골패)라는 이름으로 지금으로 치면 개인사업자와 같이 화투 제조업을 하는 개인상점으로 창업하여 현재는 일본 본사 외에도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중국에서도 사업을 진행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시기상으로는 비록 조선 말기이기는 하지만 닌텐도라는 회사는 엄연히 조선(朝鮮)시대에 만들어진 회사다(세상에 조선 시대라니...). 그런데 정작 닌텐도 일본 공식 홈페이지에는 100년 창업이나 100주년 이런 얘기는 보이지 않고 단순히 회사 설명에 이렇게 표시하고 있다.

   
[자료 참고 : 닌텐도 일본 공식 홈페이지]

創業(창업) 明治22年9月(메이지22년 9월) / 設立(설립) 昭和22年11月(소와 22년 11월) 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서 ‘昭和(소와)’는 1926년이 원년이므로, ‘昭和22年(소와22년)’이라는 얘기는(1926+22)-1=1947에 해당하여 서기로는 1947년이라는 말이다(1926년이 昭和 1년). 즉, 닌텐도는 자신들의 설립년도를 ‘1947’년이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1947년에 개인상점이었던 닌텐도를 1947년 11월 20일 ‘닌텐도주식회사(任天堂株式会社 にんてんどうかぶしきがいしゃ, Nintendo Co., Ltd., 임천당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변경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개인사업자였던 닌텐도가 사업의 포괄적 양도양수계약 방식으로 주식회사 닌텐도로 법인출자 전환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필자 같았으면 동네방네 우리 회사는 사실 100년 넘은 회사다 하고 여기저기 자랑하기 바빴겠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개인사업은 개인사업이고 주식회사는 주식회사를 철저히 나누는 부분에서도 상당히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출처:위키피디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많은 자료에서 닌텐도의 창업시기를 1889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1947년 11월이라 밝히고 있다. 필자의 오지랖으로 추측해보면 아마도 1947년 이전의 닌텐도 역사는 새로 시작할 닌텐도의 역사에 반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닌텐도는 창업 1대와 2대 사장 그리고 3대 사장의 큰 3대 변혁기를 거치게 되는데, 지금의 닌텐도는 3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山内 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회사의 모든 것이 변한 시기다. 마치 삼성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처럼 닌텐도는 3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취임 이전과 그 이후로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된다.
 
■ ‘역사와 전통’에서 한국 역사와 같이 하는 기업

1889년 ‘닌텐도’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창업 초기에는 종이화투와 트럼프 카드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속된 말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모두 취급하는 회사였다. 당시 화투(하나후다, 花札)는 종이 재질의 카드였는데 종이 사이에 석회가루를 넣어 만들어서 내려칠 때마다 ‘짝짝’ 소리가 달라붙는 타격감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Nintendo]

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보자. 닌텐도의 창업 초기 종이화투를 찍는 사업을 하였다 정도만 세상에 알려져 있을 뿐인데 조금 과장하고 억측하자면 그 당시 1890년대와 1900년대 초기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이름이 바뀌던 시절이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식민지화 되어가는 시기였다.

조선 후기 학자 황현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이라는 책을 보면 병오년 부분에 화투(花鬪)얘기가 나온다. 조선 말기, 일제는 조선 침략 과정에서 조선에 화투를 적극적으로 퍼뜨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 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 체결할 당시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을사오적(乙巳五賊)’은 화투를 즐겼다고 한다.

많은 역사 기록에서 한국의 ‘화투’ 놀이 문화에 대해 한국에 전해진 유입시기를 19세기말 대마도 상인들에 의해 부산 지방에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화투’는 1543년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최초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의 카드인 '카루타(かるた)'에서 유래되었다.

17세기 중엽 조선의 양반계층에서 유행하던 '수투(數鬪)'의 놀이방법이 조선통신사를 통한 조선과 일본간의 활발한 문화교류과정에서 기존의 '카루타(かるた)'에 접목되었고 이후 일본의 에도시대(江戶)의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풍속화가 결합하여 18세기 말에 완성된 것이다. 이것이 19세기에 이르러 우리나라에 지금의 ‘화투’와 같은 모습으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세기 말 조선시대 후기에 창립하여 ‘화투’ 제조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기업이 바로 닌텐도다.

1905년 ‘을사오적(乙巳五賊)’ 등이 화투를 즐겨 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한국의 화투 유입의 정점은 일제강점기로 봐야 할 것이다. 그 당시 국권을 찬탈 당하고 식민지 지배에 놓인 상황에서 팔자 좋게 화투 놀이를 즐겼다는 것을 좋게만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당시에 ‘닌텐도’에서 제작하고 판매한 종이화투는 과연 조선(이후 ‘대한제국’)에 수입되어 사용되었을까? 국권을 찬탈 당한 시름에 앓던 ‘대한제국’에 퍼진 화투놀이에 닌텐도는 조금의 영향도 끼치지 없었을까? 언제나 색다르게 생각해보고 뒤집어 생각해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 속에 감춰진 역사의 뒷면을 볼 수도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황현의 저술을 엮은 ‘매천집(梅泉集)’. / 출처 :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그렇다고 필자가 특별히 ‘닌텐도’에 대한 적개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역사에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에 억지스러운 필자의 생각을 풀어보았다(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필자는 1980년대 이후부터 쭉 ‘닌텐도’ 제품을 애용해왔다).

   
[지금 우리 손에는 ‘화투’ 대신 ‘스위치’가 들려있다. 사진=스위치 뉴스 홈페이지]

닌텐도의 초기 사업은 이렇게 도박에나 쓰이던 화투를 찍어내는 회사였다. 그렇게 반세기 가까이 일본의 찬탈로 신음하던 ‘대한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으로 승리로 돌아가고 패전국이 된 일본의 패망과 함께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패전 이후 1940년대 말 일본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다. 전쟁 이후 막대한 피해를 입은 패전국으로서 전쟁비용 보상 등의 문제와 군사, 무역 제한에 따라 파괴 된 내수 경제는 일본 국민을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고(우리는 더 심하게 당했다!) 이 때 일본 국민들의 시름 사이를 파고들어 달콤한 독약이 퍼져나갔는데, 그것이 바로 도박사업이다.

러시아의 마피아와 중국의 삼합회와 더불어 세계 3대 폭력 조직 중에 하나라 알려진 일본의 ‘야쿠자’들이 개입한 일본의 도박사업은 일본 경제를 뒤흔들 만큼 그 시장이 점점 커져갔고, 여기에 닌텐도가 만든 화투와 트럼프 역시 공장에서 찍는 즉시 바로 팔려나갔다. 한때 ‘조선’ 그리고 그 이후 ‘대한제국’으로 이름이 바뀐 우리나라를 좀 먹던 도박 사업이 이제는 자국(일본)을 좀 먹는 사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닌텐도의 3대 회장이자 현재 회사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야마우치 히로시(山内 溥)’는 이런 주위의 시선과 도박 사업에 발을 들인 가업이 영 못 마땅했는지, 어린 시절부터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고(필자가 보기에는 없는 것처럼 행동한 것 같지만..) 망나니처럼 살았다고 한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 ‘화투 만드는데예..’ 이미지 인용 : 영화 친구 중]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건 돈을 많이 번다는 것뿐이었을 것이고, 부러움이라는 느낌보다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가문의 사업을 어디 가서 떳떳하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보내던 야마우치 히로시라는 어린 소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떤 반감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현재까지도 일반인에 대한 도박사업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형사처벌이 되기도 해서 해외에서 도박을 했다 하더라도 입국과 동시에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하는 나라다. 하지만 옆 나라 일본의 경우는 ‘빠찡꼬(파칭코)’라 불리는 도박사업이 신기하게도 합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일본의 ‘빠찡꼬’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소재와 더불어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재미나게 만들어진 것들도 많은데, 여기서 얻는 세금의 상당 부분이 다시 국가의 운영유지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양지에 속해 있는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기에 ‘빠찡꼬’ 때문에 인생을 망치거나 어려움을 겪는 소재의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많이 있다.

비록 합법적이고 ‘국민도박’이라 불리기도 하고 국가 전체적으로 ‘빠찡꼬’ 관련 수익이 400조원에 가까운 큰 사업영역이지만, 모두에게 환영 받거나 부러움의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일본 청춘 영화를 보더라도 주인공 중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싶은 친구들 중 일부가 ‘빠찡꼬’에서 담배를 피며, 불량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다정한 연인이 ‘빠찡꼬’를 즐기는 장면이라던가 아버지 아들이 사이좋게 부자지간에 ‘빠찡꼬’를 즐기는 장면들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물론 실제로도 정말 재미 삼아 적은 돈으로 즐기다 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된다. 사회적 인식으로도 ‘빠찡꼬’ 사업으로 부를 이룬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른 업종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는 딱히 입양이라던가 친자 같은 핏줄 얘기에 별다른 편견은 없지만, 1900년대 초만 해도 친자 구별과 상속에 큰 의미를 두던 시절이라 어째서 2대 사장직을 친자식이 아닌 입양아가 그 자리를 물려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는 대를 이를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데릴사위들을 데려왔는데 그 중에 한 명이 2대 사장을 지낸 ‘야마우치 세키료(山内積良)’이고 나머지 한 명이 3대 사장을 지낸 ‘야마우치 히로시’의 아버지다.
 
■ 23세에 사장 취임, 닌텐도 새 역사를 만든 야마우치 히로시

   
[[야마우치 히로시. 출처:위키피디아]

1889년 창업 이후 1929년까지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사장을 지내고, 그 뒤를 이어 1929년부터 1949년까지 제2대 사장을 지낸 인물은 ‘야마우치 세키료’라는 사람인데 그는 창업자의 친 아들이 아닌 입양아였다(이미지 참고 : https://en.wikipedia.org/wiki/Hiroshi_Yamauchi)

여기서 주목해 볼 점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1927년 생이고 그가 닌텐도의 3대 사장직을 맡았을 때는 1949년이었다. 즉, 그의 나이 23살 때(만 나이를 따졌을 때는 21살) 라는 얘기인데 20대 초기의 혈기왕성하고 젊은 나이였던 닌텐도의 3대 사장이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닌텐도 회사에서 가족들을 전부 정리 해고하는 일이었다.

장자 상속이 당연시 되던 그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 2대 사장 ‘야마우치 세키료’가 자손이 한 명도 없지 않았다면, 당연히 2대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세키료의 자손 중에 한 명이 사장직을 이어 받았을 텐데, 신기하게도 당시 (만)21살 밖에 안 됐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닌텐도라는 회사를 손에 쥐게 된다.

야마우치 히로시 역시 데릴사위의 아들이었고 2대 사장을 했을지도 모를 그의 아버지는 그가 6살 때 집을 나갔다고 한다. 여기에도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친족이 아닌 관계에 아버지들의 암투와 그의 자식들이 벌여야 했던 사투는 그 당시 큰돈을 만지는 사업체의 가정사에 접목시켜 보면 흔히 보던 드라마의 소재처럼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가 회사를 손에 쥐자마자 바로 시작한 일은 회사에서 가족들을 분리하는 '정도경영'을 펼쳤다. 아마도 2대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세키료의 일가친척이 아니었을까 싶다. 3대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 당시 일본의 명문 대학 중에 하나인 ‘와세다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었고 그것 하나만 가지고 사람에 대해 속단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최소한 일반인 수준 이상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당시 사장직을 맡아야 했을 야마우치 히로시의 아버지가 사라지자 후계자 없는 회사에 일가친척들이 경영진에 포진해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회사에 있는 친인척들을 정리해고하면서 기존에 그들이 벌여왔던 도박 ‘화투’ 사업도 정리하기에 이른다.

사사로운 정에 휩쓸리지 않고 정도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던 야마우치 히로시였지만, 정작 그의 친한 친구가 자기 아들을 부탁했을 때는 회사에 입사시켜주었다. 이상의 사건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는 사사로운 정에 휩쓸리기 싫었던 게 아니라 단지 2대 사장 일가친척이 혈연이 아니며 그 일족들이 자신의 친할아버지는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혼이 서려있는 회사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아마 1대 창업주는 마지막 임종 순간에까지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회사를 물려받을 것을 권했던 것을 보면 그를 굉장히 아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게 친구의 부탁으로 입사시켜준 친구 아들은 공부는 딱히 잘 하는 것 같지 않고 자기 방 안에서 이상한 그림만 그리던 친구였는데, 어쨌든 친구의 아들이었기에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비록 자신의 아버지 지인의 추천으로 닌텐도에 면접(형식적인)을 보고 입사했지만, 닌텐도의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역시 친한 친구의 부탁이었기에 친구의 아들을 입사시키게 해주었다. 하지만, 입사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사장과 사장의 친구라는 지인 관계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장 친구의 아들은 장난감(완구) 포트폴리오를 들고 야마우치 히로시를 찾아갔고 그가 들고온 포트폴리오에 만족한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결국 그를 채용하게 된다.

   
 

그가 3개월 뒤에 만들어 낸 게임이 바로 ‘동키콩’이고 그 친구의 아들이라는 사람은 닌텐도의 마스코트 ‘마리오’를 이 세상에 탄생시킨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이다. 게임의 이름처럼 이 게임의 주인공은 ‘콩’이다.

화면에 아래에 보이는 사람은 실제 ‘마리오’이긴 하지만 이 게임의 주인공은 당당히 배역의 이름까지 있는 ‘콩’이었다.
 
■ 마리오-동키통 만든 미야마토 시게루, 닌텐도를 글로벌 기업으로

그렇게 낙하산 인사처럼 입사한 친구의 아들은 입사 후 3년 간 장난감(완구) 디자이너로 일한다(그 당시 닌텐도에서 판매하던 광선총은 인기가 많았다). 그렇게 장난감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에 3년 뒤 사내 공모전에서 ‘게임’쪽 일도 해볼까 싶어서 제안한 아이디어가 덜컥 채택되게 된다. 난생처음 만들어 보는 게임이었지만, 그 친구의 아들이라는 사람은 불과 3개월 만에 혼신의 힘을 다해 게임 하나를 완성해 내게 된다(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 했다지만, 천재인가?).

이 때만 해도 ‘마리오’는 따로 이름이 없었다(‘점프맨’이라 불리기도 했다). ‘동키콩 주니어’ 게임에서야 닌텐도 북미 지사 미국 지사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마리오’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름이 있어야 더 잘 팔린다는 지극히 어른들의 마케팅적인 의견).

‘콩’은 최근 ‘콩 스컬 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영화로도 나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킹콩’도 콩 중의 콩이라 ‘킹(King)콩(Kong)’이다. 게임의 이름인 ‘동키콩’은 바보같이 어리석다는 의미의 ‘동키(Donkey)’와 킹콩의 ‘콩(Kong)’을 합쳐 ‘동키콩’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이 게임은 그 당시 북미는 물론 전 세계에서 이미 먼저 유명해진 ‘킹콩’을 따라했다는 이유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저작권 소송에 휘말리지만 결국엔 ‘닌텐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참고로 ‘킹콩’ 영화는 1933년 처음 등장 이후 지금까지 여러 편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필자도 아주 어린 시절 극장에서 본 ‘킹콩2(1986년 상영)’에서 인공심장 수술을 하는 장면에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킹콩’의 심장을 꺼내는데 전기 톱 크기가..).

   
[‘동키콩’ 실사판?]


이 게임이 출시되기 전에 닌텐도의 상황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미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대고 있었고 손대는 족족 말아먹어서 회사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화투’ 사업으로 시작해서 큰 재미를 봤던 닌텐도 회사는 중간에 ‘장난감’ 위주의 회사로 변모했는데 그게 신통치 않았다. 이 바닥에는 워낙 경쟁자가 많았고 그게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인스턴트 식품 사업도 해봤지만 역시나 별다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숙박업이 대세라고 판단해서 러브호텔과 택시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이 역시 큰 손실만 남기고 실패로 끝이 나 버리는 등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70년대 오일쇼크 파동으로 일본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서 그나마 재미를 보던 장난감 사업도 손을 접어야 했다. 이렇게 회사가 갈팡질팡 하고 오락가락 하던 시기에(그래도 안 망하고 버틴 걸 보면 ‘화투’사업으로 쌓아 놓은 여유자금이 대단했나 보다). 저번에 뽑아 놓았던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의 친구의 아들이 일을 저질렀다.

비록 시작은 ‘사장 친구 아들(사친아)’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위기에 처했던 닌텐도는 다시 한 번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가게 된다. 필자가 미야모토 시게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게임에는 필자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게임의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든 캐릭터들. 사진 출처=마이닌텐도뉴스닷컴]

그의 게임에는 지나친 폭력이나 선정성이 없다. 정말로 온 가족이 모여서 게임을 해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게임들을 만들어냈다(하지만, 아직 필자는 그런 게임들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가 남긴 주옥 같은 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그 게임을 하는 사람도 즐거울 수 없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퇴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밤이 깊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게임회사들의 사무실 불빛을 일컬어 ‘구로의 등대’ 같은 말이 나오는 현 실정에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단지 공장의 기계처럼 일하는 세태를 보면 개발자들이 그 안에서 정말 즐겁게 일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그래서 요즘 게임들은 재미가 없나?).

지금의 ‘닌텐도=마리오’이고 ‘마리오=닌텐도’일 만큼 미야모토 시게루가 닌텐도에 남긴 업적은 그 누구나 인정하고 세계적으로도 이미 그는 게임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존경 받는 게임 개발자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급

1등급: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Légion d'Honneur Grand-Croix)
2등급: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Légion d'Honneur Grand Officier)
3등급: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Légion d'Honneur Commandeur)
4등급: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Légion d'Honneur Officier)
5등급: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Légion d'Honneur Chevalier)

그리고 ‘마리오’ 하나로는 뭔가 좀 부족했는지 또 하나의 대작 게임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 게임이 바로 ‘젤다의 전설’ 시리즈다. ‘동키콩’으로 게임 개발자의 능력을 인정받고, ‘마리오(슈퍼 마리오)’ 시리즈와 함께 ‘젤다의 전설’시리즈까지 정말 잘 키운 사장 친구 아들 하나가 회사를 먹여 살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또 하나의 대작 시리즈 – 젤다의 전설 시리즈]


그렇게 ‘마리오’ 시리즈와 ‘젤다’ 시리즈로 그는 1998년 AIAS (AIAS Hall of Fame, 미국의 게임업계 공로자에게 주어지는 상)를 수상하고 2005년 3월에는 미국의 할리우드 명성의 길을 따라 샌프란시스코 메트레온 센터에 만들어진 ‘게임의 길(Walk of Game)’에서 처음으로 별(star)을 받게 되었다.

2006년 3월 13일에는 프랑스 훈장으로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장’을 받게 된다. 수상 당시 그의 인터뷰 내용은 ‘예술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인 나라(프랑스)에서도 가치를 평가받게 되어 영광이다. 비록 혼자서 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게임업계 전체로서의 영광스런 일이기에 (훈장을) 받기로 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가 수여 받은 ‘슈발리에장’이라는 훈장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가 1802년 제정한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라는 프랑스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자료 참고 : https://ko.wikipedia.org/wiki/레지옹_도뇌르_훈장]

한국에서도 꽤 많은 분들이 이 훈장을 받았는데, 이 훈장은 5등급으로 이루어져있다. 조중훈(전 한진그룹 회장)과 조양호(한진그룹 회장, 대한항공 대표이사)와 함께 UN 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 이렇게 3명이 외국인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Légion d'Honneur Grand Officier)’ 훈장을 수여받았다(그런데 훈장 받은 분들이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는 듯 한 것 같은 것은 필자의 착각?).

어찌됐든, 이 훈장을 프랑스 사람이 아닌 외국사람이 그것도 동양 중에서도 유럽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동양의 끄트머리 그래서 극동아시아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 사람이 수여 받았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일이며, 주로 정치, 경제인들이 받는 상인데 게임 개발자가 상을 수여 받는 것 또한 대단한 영광이다.

   
[2012년 한국에 최초한 미야모토 시게루. 사진=게임톡]

현재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게임업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게임 업계의 대선배 중의 한 명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젤다의 전설’이 탄생할지 필자는 기대하고 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창업주 야마우치 후사지로와 창업주의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 3대 사장, 그리고 미야모토 시게루까지 닌텐도라는 회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여기서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이 분을 빼놓으면 섭섭해 할 한 사람이 더 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요코이 군페이(横井軍平)’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필자의 잡소리
게임별곡 시즌1(원래는 ‘게임별곡’이었지만, 시즌2를 시작하면서 필자 맘대로 ‘시즌1’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보았다)을 끝낸 뒤로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는 애독자들의 연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필자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소문을 무기로 시즌2에 대한 압박을 행사하던 ‘게임톡’에 결국 굴복하여 다시 이렇게 시즌2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게 되었다.

시즌1은 주로 고전 게임을 탐방, 리뷰 한다는 명목으로 필자 개인의 과거사를 논하는 ‘추억팔이’였다. 시즌2는 ‘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고 몰라도 사실 크게 상관없는’ 게임회사들의 과거사를 필자의 기억과 정보를 통해 풀어낼 작정이다.

완전하지 않고 어정쩡한 어린 시절 기억과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얘기들도 포함될 수도 있지만, 팩트체크를 통해 최대한 거를 생각이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불을 붙이고 뜨겁고 빠르게 확산되는 흥미 있는 얘기들은 뒷이야기다. 게임이 탄생과 만드는 사람, 시대의 트렌드 등 유명 게임사 뒷담화(카더라 통신)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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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오 드디어 시작하셨군요.
(2017-05-03 03: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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