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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소닉' 없는 세가는 상상할 수 없다파란색 로고로 아케이드-게임기 시장 석권...‘세가 사미 홀딩스’ 합병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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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4  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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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시즌2 [2회 세가 상] 닌텐도와 가정용 콘솔게임기 시장 양분 소닉의 ‘세가’

   
[1991년 바람같이 등장한 ‘바람돌이 소닉’]

일본의 게임업계를 얘기할 때 ‘닌텐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닌텐도’를 얘기할 때 또 빠질 수 없는 상대가 바로 ‘세가(SEGA)’라는 회사다.

양사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숱한 전쟁을 벌였고 세가 측에서 제대로 완벽한 압승을 거둔 기억은 별로 없지만(그래도 아케이드에서는 강자!) 언제나 상대방 닌텐도와 함께 가정용 콘솔게임기 시장을 양분하며 현재까지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건재한 몇 안 되는 오랜 역사의 게임회사다.

   
[파란색이 특징인 ‘SEGA’의 로고]

닌텐도를 상징하는 빨간색 로고와 세가를 상징하는 파란색 로고를 내세워 ‘세기의 전쟁’을 다룬 책이 나올 정도다. 1991년 바람같이 등장한 ‘바람돌이 소닉’으로 닌텐도의 최대 라이벌로 우뚝 선 세가의 빛과 그림자, 대표 게임을 조망해본다.   

닌텐도와 가정용 콘솔게임기 시장 양분  

   
[출처 : http://sega-games.co.jp/company/outline/]


공식 기록으로는 1960년 6월 3일 설립되었다고 나와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하드웨어 주크박스 사업을 시작으로 1940년 설립한 회사인 ‘스탠더드 게임스(Standard Games)’의 일본지부 ‘서비스 게임즈 재팬(Service Games Japan)’으로 시작된 회사였다.

본격적인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 진출은 1983년부터다. 2001년 가정용 게임기의 제조와 판매로부터 완전히 철수하기까지 숱한 고생길을 걸어왔던 회사다(물론 영광의 시기도 있었다).

처음부터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집중했던 닌텐도와 달리 세가는 원래 아케이드 게임 시장(오락실)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던 회사였다. 당연히 가정에서도 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할 수 있다면 개발사 입장에서는 집안이나 집 밖에서 양쪽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세가 입장에서도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도 8비트부터 그 이후로 내놓은 게임기들의 성적이 영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2001년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서 완전 철수하게 된다. 가정용 콘솔 게임 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다른 회사였다면 벌써 3번은 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혹평도 듣는 회사다. 하지만 현재 ‘세가 사미 홀딩스’라는 거대 조직으로 인수합병 되면서 ‘세가 사미 홀딩스’의 파칭코 사업이 돈을 긁어모으는 중이라 한동안은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파라다이스 세가 사미’의 ‘파라다이스 시티’ 조감도(출처 : 파라다이스 시티 공식 블로그)]

 

‘세가 사미 홀딩스’는 2017년 4월 20일 한국의 인천 국제공한 국제업무단지(IBC)에 초대형 복합 리조트인 ‘파라다이스 시티’ 오픈식을 열기도 했다. 축구장 46배 크기인 33만 제곱미터 규모의 호텔, 카지노, 컨벤션, 플라자, 스파, 클럽, 가족형 엔터테인먼트, 공영장 등이 들어서는 복합 리조트 ‘파라다이스 시티’에 1조 3000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자했다(세가는 게임 회사 아닌가?). 라이벌 업체 닌텐도가 게임 회사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에 비해 최근의 세가는 게임업계라기보다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한 부분으로 남아 근근이 게임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때는 아케이드 센터(오락실)의 절대 강자이자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도 나름대로의 입지를 다져가며 ‘게임’ 사업을 영위하는 게임 회사의 이미지가 강했던 회사다. 8비트 가정용 콘솔 게임기인 ‘SG-1000’을 시작으로 16비트 ‘메가 드라이브’와 32비트 게임기였던 ‘세가 새턴’을 지나 128비트의 ‘드림캐스트’까지 꾸준히 콘솔 게임기 시장을 두드려 왔다. 참고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세가 새턴’의 경우 ‘세가’의 6번째 게임기이기 때문에 태양계의 6번째 행성인 ‘토성(Saturn, 土星)’의 이름을 따왔다.

[세가의 게임기 출시 순서]
(1) 1983년 : SG-1000
(2) 1983년 : SC-3000
(3) 1984년 : SG-1000 II
(4) 1985년 : 세가마크 3
(5) 1988년 : 메가드라이브
(6) 1994년 : 세가 새턴
(7) 1998년 : 드림캐스트 

1983년 ‘SG-1000’ 게임기 출시 이후로 숙명의 라이벌로 서로 견제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했던 닌텐도와 세가는 정신없이 싸우는 과정에 난데없이 나타난 소니(SONY)의 반격(플레이스테이션)으로 양 진영의 싸움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세가(SEGA)는 더 이상 가정용 콘솔 게임기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세가와 닌텐도가 처음으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사업에 진출했던 1983년은 게임 업계 역사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이기도 한데, 바로 전설의 ‘아타리 쇼크’가 발생한 해이기 때문이다(아니 이렇게 되면 다음 기사는 ‘아타리’편인가?).

1983년을 다른 말로 ‘비디오 게임 시장 전멸의 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때 30억 달러(약 3조 3870억원)까지 그 시장 규모가 컸던 비디오 게임 산업이 ‘아타리 쇼크’로 인해 끝도 없는 추락으로 1억 달러(약 1129억 원)까지 시장규모가 쪼그라들 정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말이 30배이지 여차하면 지구상에서 ‘비디오 게임 산업’이라는 산업 분야 하나 자체가 역사서에나 기록될지도 모를 정도였다. 필자가 닌텐도와 세가를 높이 사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 산업이 전멸해가던 시기 1983년에 용감하게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사업에 당당하게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게임기 시장에서 성공하며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두 회사 모두 가정용 콘솔 게임기 출시일이 1983년 7월 15일로 같다는 것이다(누가 먼저 정했고 누가 따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줄여서 패미컴 또는 FC)’는 북미와 유럽에서는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같은 날짜에 세가는 ‘SG-1000’이라는 이름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를 출시했는데, ‘SC-3000’과 동시에 발매되었다(SG-1000의 SG는 ‘Sega Game의 약자이고 SC-3000의 SC는 ‘Sega Computer’의 약자다).

8비트 시장에 이어 16비트 시장까지 그렇게 치고 박고 미운 정 고운 정 들어가며 닌텐도와 함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양분하던 세가도 야심차게 출격한 ‘드림캐스트’가 몰락하는 바람에 창사 이례 역대 최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때 시설 사업 부분에서 46억엔(약 457억 1664만 원, 원이 아니라 엔), 소비자 사업 부분에서는 무려 430억 3,200만 엔을 기록하게 된다. 2001년 4분기에는 영업적자가 520억 1900만엔까지 치솟을 정도로(다시 말하지만 ‘원’ 단위가 아니라 ‘엔’단위) 회사 내 사정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일본의 파칭코 업체인 ‘사미’에 합병되게 되었다.

게임기 드림캐스트 몰락, 일본의 파칭코 업체인 ‘사미’에 합병

   
[세가 인수 실패? 그럼 우리끼리 합친다!]


합병에도 많은 사연이 있었다. 처음에 세가라는 굴지의 회사를 눈독들인 많은 회사 중에 하나가 남코였다. 하지만 세가측에서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반다이의 경우에는 반다이 측에서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쩌면 ‘세가 반다이’가 될 수도 있었는데, 결국에 이 두 회사는 ‘세가’와 합병에 실패하고 둘이 합쳐서 ‘반다이남코’가 된다.

그 뒤에 ‘EA’나 ‘MS(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합병설에 대한 추측이 나돌았으나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 결실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X-BOX 개발진에 의해 세가 합병을 추진했으나, 빌 게이츠가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세가는 애초에 다른 회사에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세가의 사장과 ‘사미’의 사장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었고 합병절차는 양사의 이해관계에 따른 업무 협약이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최고 경영자들끼리의 친목이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소문이다.

양사의 합병은 꽤 성공적인 결과를 달성했고 실제로도 합병 이후 세가에서는 151억엔이 넘는 영업손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미’ 그룹의 활약으로 그룹 전체적으로는 영업이익 583억엔, 당기 순이익은 218억엔을 기록하게 된다(아마 ‘세가’쪽 사람들은 눈치 좀 많이 봤을 듯..).

합병 이후에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2004년 10월 1일 주식회사 ‘세가’와 ‘사미’ 주식회사가 합쳐서 ‘세가 사미 홀딩스’라는 이름으로 세가 사미 그룹을 형성한 이후로 2015년 4월 1일부로 자회사 조직 개편안에 따라 ‘세가 게임즈(SEGA GAMES)’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직이 개편되었다. 원래 ‘세가 사미 홀딩스’는 기기사업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부와 리조트 사업의 크게 3개 사업 그룹으로 운영되었고 세가’는 엔터테인먼트 그룹에 속해있었다.

이 ‘사미’라는 그룹은 굉장히 복잡한 구조의 회사로 자회사만 해도 20여 개가 훨씬 넘는다.
대표적인 자회사만 해도 ‘사미’ 그룹을 필두로

Sammy Corporation
Sammy Digital Security Co., Ltd.
Sammy Facility Service Co., Ltd.
Sammy Networks Co., Ltd.

위의 회사들과 아래의 ‘세가(SEGA)’그룹들이 있고

SEGA ENTERTAINMENT CO.,LTD
SEGA Games Co., Ltd.
SEGA Holdings Co., Ltd.
SEGA Interactive Co., Ltd.
SEGA LOGISTICS SERVICE CO., LTD.
SEGA SAMMY BUSINESS SUPPORT INC.
SEGA SAMMY CREATION INC.
SEGA SAMMY GOLF ENTERTAINMENT INC.
SEGA TOYS CO., LTD.
위 회사들 외에도 수 십 개에 달하는 회사들이 속해있다.

공식적인 기록에 있는 자회사만 해도 이 정도인데(부럽다!) 계열사끼리 역할 분담이 얼마나 잘 짜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복잡한 회사임에는 분명하다. 이 중에서 게임 사업에 관련 된 계열사는 아케이드(오락실)센터 영업은 ‘세가 엔터테인먼트’에서 담당하고 아케이드 게임 개발은 ‘세가 인터랙티브’에서 담당하며, 모바일 게임은 ‘세가 게임즈’에서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세계 최대의 아케이드 게임 개발-유통 회사였으나, 연이은 콘솔 게임기의 실패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인지 뒤처진 것인지 애매한 경영진의 판단착오 등이 겹쳐 악화된 경영실패로 결국 지금의 ‘세가 사미 홀딩스’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세가(SEGA)’라는 이름 자체도 ‘SErvice GAmes’의 약자이고 보면 그야말로 게임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회사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데, 현재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세가의 마스코트 ‘소닉’ 등장, 닌텐도와 진검승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금은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하드웨어 사업은 완전 철수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유통 등의 2선으로 물러나 있는 듯한 모양새지만 한때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맞수이자 라이벌이었던 닌텐도에 유일하게 대항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했던 적도 있었다. 8비트 시절부터 두 진영은 피 터지는 싸움을 했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결국 ‘소닉’이라는 세가의 마스코트 캐릭터의 등장으로 수세에 몰리던 세가는 진검 승부를 펼쳐 보이며 닌텐도에 맞설 유일한 세력이 되어 비디오 게임 시장을 양분하게 된다(천하이분지계?).

닌텐도에 ‘마리오’라는 대표 캐릭터가 있다면 세가에는 ‘소닉’이 있다. 닌텐도에서 ‘패미컴’을 출시했을 당시 ‘세가 마스터시스템(SMS)’을 한국기업 삼성에서 ‘알라딘 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으나, ‘마리오’라는 든든한 캐릭터를 등에 업고 초반에는 닌텐도가 먼저 선수를 치고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중이었다. 한국에는 삼성의 라이벌 격이었던 현대전자에서 닌텐도의 ‘패미컴’을 들여와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유통하면서 한국에서도 두 맞수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서 : 콘솔워즈 (세가 VS 닌텐도 세기의 전쟁)]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닌텐도와 세가의 이런 치열한 싸움에 대한 내용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책으로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상당한 내용의 분량으로 788쪽에 달하는 꽤나 두꺼운 책이다. 책 표지 디자인부터 닌텐도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세가를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지금은 세가의 마스코트가 된 ‘소닉’도 처음에는 ‘소닉’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고슴도치를 본 뜬 캐릭터라는 의미에서 ‘미스터 니들마우스(Mr. NeedleMouse)’라고 불렸다. ‘소닉’은 사실 ‘소닉 더 헤지호그(Sonic The Hedgehog)’라는 풀 네임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게임잡지 등에는 종종 ‘소닉 더 헤지훅’ 등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닉’은 고슴도치에서 따온 캐릭터다.

처음 ‘소닉’ 캐릭터를 본 사람들은 파란 몸체의 고슴도치인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경영진에서도 그 당시 고슴도치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모르는데 누가 관심이나 갖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소닉’ 게임개발에 회의적이었다.

지금이야 애완동물로도 많이 키우는 고슴도치지만, 당시는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개발한 제주 흑돼지 캐릭터 런 게임에서도 주인공 캐릭터는 귀여운? 보라색 돼지 캐릭터인데 왜 흑돼지가 검은색이 아니고 보라색이냐는 질문에 필자는 ‘아니 그럼 바람돌이 소닉은 고슴도치인데 왜 파란색입니까?’라고 반문했던 기억이 난다(먹히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닌텐도의 ‘마리오’처럼 자타공인 ‘소닉’은 세가의 마스코트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게(사실은 엄청나게 의도했음) 세가의 마스코트가 된 ‘소닉’은 닌텐도의 ‘마리오’라는 캐릭터를 경쟁상대로 대항할 수 있을만한 무언가 만들어 보자는 의도로 시작되었고, 캐릭터 공모전 등을 통해서 다양한 디자인 제안을 받았다.

그 중 ‘야스하라 히로카즈’라는 개발자와 ‘오오시마 나오토’라는 디자이너가 현재의 ‘소닉’ 디자인 초안을 제안하게 된다. ‘소닉’의 몸이 파란색인 이유도 세가의 로고가 파란색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닌텐도에서 ‘소닉’을 만들었으면 빨간색 고슴도치가 될 뻔했다). 이렇게 캐릭터 사업부의 총괄을 담당하던 ‘나카 유지’에 의해 ‘야스하라 히로카즈’와 ‘오오시마 나오토’를 중심으로 ‘소닉’ 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마리오’와 함께 꽤나 장수 캐릭터인 ‘소닉’ / 2016년이 ‘소닉’ 25주년이었다.]

 

경쟁 상대였던 ‘마리오’게임의 여러 부분을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마리오’게임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부분에 최대한 집중해서 ‘소닉’ 게임을 완성시켰다. 완성된 게임은 ‘마리오’ 게임에 비해 보다 더 속도감 있고 활동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게임으로 호평 받았다. 하지만, 정작 게임이 완성되어 출시 직전에 그 당시 세가의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이 딴 게임은 어디에도 팔 수도 없고 팔리지도 않는다고 반대했다(아니 글쎄 고슴도치를 누가 아냐고?).

결국 ‘나카 유지’의 끈질긴 설득에 의해 결국 출시는 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간신히 출시는 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는 익히 알다시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북미지역의 ‘메가 드라이브’ 게임기의 점유율을 수직상승 시키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당시 일본 국내보다 북미 지역에 더 큰 호평을 받았다. 비록 8비트 시장에서는 닌텐도에 참패를 당하지만, 16비트 시장에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선전을 거두며 국내외의 가정에 세가의 콘솔 게임기를 들여놓게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때가 ‘세가’의 제1부흥기가 아닐까 싶다.
 

   
[‘소닉’ 없는 ‘세가’는 상상할 수 없다?]


그 시절에 닌텐도와 경쟁할 수 있는 업체는 세가 이외에 없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그 누구도 닌텐도의 아성에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가는 계속해서 닌텐도를 향해 도전의식을 불태우며 결국 ‘소닉’을 탄생시키고 16비트 시장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된다.

비록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는 ‘닌텐도’에 밀리는 양상을 보였지만, ‘세가’의 텃밭은 따로 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행온(1985)’을 시작으로 ‘스페이스 해리어(1985)’, ‘아웃런 (1986)’, ‘애프터 버너 2(1987)’ 등의 지금도 많은 분들이 기억할만한 명작 체감형 게임을 선보이며 아케이드 센터(오락실)에서 승승장구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버추어 레이싱(1992)’, ‘버추어 파이터(1993)’, ‘버추어 스트라이커(1994)’, ‘버추어 캅(1995)’ 등의 ‘버추어’ 시리즈로 다시 한 번 오락실의 강자로 거듭나게 되는데, 유독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만큼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닌텐도에 늘 밀리는 모양새로 만년2등 자리에 머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그래도 2등이 어디냐).
 
닌텐도 맞선 ‘소닉’ 캐릭터 만든 나카 유지 일등공신

   
[‘나카 유지(中裕司)’]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에 의해 수세에 몰린 세가를 구원한 것은 ‘소닉’이라는 의견에 공감하시는 분이 많을 정도로 ‘소닉’이 없었다면 ‘세가’의 16비트 시장 진출은 그 앞날이 어떠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도 ‘세가’하면 떠올리는 마스코트 캐릭터 ‘소닉’을 탄생시킨 인물이 ‘나카 유지(中裕司’라는 ‘세가’의 일등공신 중에 한 명이다. 

‘나카 유지’라는 양반은 필자가 베스트 게임으로 꼽는 ‘버처 파이터’의 수장 ‘스즈키 유’의 프로그래밍 제자였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오락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게임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운 뒤에 고졸의 학력으로 세가에 지원하여 당당히 합격했다.

입사 후에 아케이드(오락실) 게임 ‘스페이스 해리어’, ‘아웃런’ 등을 개발하고 1990년에 ‘야스하라 히로카즈’와 ‘오오시마 나오토’와 함께 ‘소닉 더 헤지호그’ 게임을 개발하여 개발자로서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 이후 ‘소닉2’를 개발하고 ‘소닉2’의 경우 공식 집계된 판매량은 600만장이 넘을 정도로 대박을 거두게 되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게임 판매량 베스트 TOP 100 리스트에 기록되어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나카 유지는 스즈키 유의 제자였고, 나카 유지 스스로도 스즈키 유를 업계의 선배이자 동료이며, 그리고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소닉 더 헤지훅’ 게임에 보면 크레디트 화면에 ‘나카 유지’는 ‘YU2’라는 닉네임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YU2’라는 이름이 그의 이름 ‘유지’의 일본어 발음이기도 하지만, ‘스즈키 유 2’ 또는 ‘제2의 스즈키 유’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닉네임은 그렇게 ‘스즈키 유’를 존경하면서 지었다고 해도 많은 인터뷰에서 그는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를 자신의 게임 개발자로서 갈 길을 제시한 스승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양다리?).

그의 진가는 ‘판타지 스타 2’개발 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판타지 스타 2’ 게임은 애초에 마크3 기종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당시 ‘세가’의 신형 콘솔 게임기 ‘메가 드라이브’기종으로 출시가 변경되었다. 아마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새로운 신형 병기(메가 드라이브)에 탑재할 강력한 포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플랫폼(기종) 변경은 그렇다고 해도 영업팀과 약속한 개발기한은 6개월여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회사 내부(이라 쓰고 실제 개발팀은)는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카 유지는 보란 듯이 출시 일정을 맞춰냈고 완성도 또한 굉장히 높은 퀄리티 작품으로 완성시켜 초기 ‘메가 드라이브’ 매출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카 유지’는 세가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식되고 불과 25살의 나이에 ‘세가’의 게임 개발 팀장으로 역임 되며 1990년 ‘소닉’의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onic.sega.jp]


이렇게 개발된 ‘소닉’은 상대진영 닌텐도의 ‘마리오’게임과 함께 1991년 북미의 크리스마스를 융단폭격하기 시작했다. 양사의 피 튀기는 전쟁은 결국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닌텐도의 ‘슈퍼패미컴’과 세가의 ‘메가드라이브’ 양 진영을 합쳐 무려 500만대가 넘는 게임기를 판매하게 했고 이 수치는 당시 일본의 1년치 TV 생산대수와 맞먹는 굉장한 수치였다. 이때부터 전 세계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은 ‘닌텐도’ vs ‘세가’의 양강 구도로 굳혀지게 되고 그 중심에는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 vs ‘세가의 나카 유지’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큰 회사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인재가 되어서인지 ‘소닉 더 헤지호그’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후속작 개발과정에서 상부와 마찰을 겪으면서 그는 퇴사까지 결심하게 된다(무능한 높은 자리 양반들이 하는 짓은 국적불문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양이다).

결국 함께 ‘소닉’ 게임을 개발했던 ‘야스하라 히로카즈’와 ‘오오시마 나오토’의 간곡한 만류로 퇴사는 보류했지만, 더 이상 일본 국내에서 게임 개발을 진행할 마음이 없었던지 북미지사로 자리를 옮겨 ‘소닉 더 헤지호그 2’를 개발했다. 이 게임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6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그 후로도 그는 많은 ‘소닉’ 시리즈를 개발하면서 그는 세가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게 되었으나, 현재는 별도의 독립업체 ‘프로페(PROPE)’를 창업하여 따로 활동 중이다.

적과의 동침...‘Wii’ 버전 ‘마리오&소닉 올림픽’ 버전 1600만장

‘마리오’는 아직도 굳건한 이미지가 강한 반면, ‘소닉’은 뭔가 점점 약해져 가는 느낌에 서글픈 마음이다. 대표 캐릭터 ‘소닉’의 침체기만큼 그도 한동안의 암흑기를 지났으나 다시 한 번 저력을 발휘하여 닌텐도(적과의 동침?)의 ‘Wii’ 버전 ‘마리오&소닉 올림픽’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1600만장 이상 판매한 히트작으로 게임 개발자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한때는 숙명의 라이벌 이었던 ‘마리오’와 ‘소닉’이 이렇게 한 화면에 등장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알았을까?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과거 서로 죽이지 못해(그냥 필자의 생각) 핏대를 세우고 싸우던 회사들이 언젠가부터 서로 손 잡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복잡 미묘한 심정이란 단순히 글자 몇 개로 표현하기에는 힘든 감정이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즐겨오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스퀘어’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에닉스’가 손잡고 ‘SQUARE・ENIX CO., LTD.’ 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회사로 합쳐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마리오’와 ‘소닉’이 손 잡았을 때는 기나긴 싸움이 끝나고 ‘마리오 대(VS) 소닉’이라는 경쟁구도의 이름에서 ‘마리오 와(&) 소닉’의 협력자 입장으로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일본 게임 업계를 유심히 분석해 보면 한 동안 경쟁상대로 치열하게 피 터지는 시장 점유율 싸움을 하던 게임이나 업체들이 어느 순간 콜라보라는 이름으로 같은 게임의 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하는데, 필자는 이런 것들 것 비록 철저한 상업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라 할지라도 엄청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인기가 많아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됐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히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기도 한데, 만약 ‘소닉’이 계속해서 ‘마리오’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면 굳이 손잡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손을 잡은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협력상대로 보일 순 있지만, 내가 아쉬운 게 없다면 굳이 협력할 필요가 없이 승자독식하는 것이 세상이치 아니던가? (아닌가?)

외견상으로 엄청 화해적이고 감동스러운 협력 작품처럼 보이는 ‘마리오 와 소닉’의 콜라보 게임이지만, 실제로 이 게임을 해보신 ‘소닉’의 팬들 중에는 실망한 분들도 많이 있는데, ‘소닉’ 게임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소닉’만의 속도감이 많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완전 협력했어요. ?]


실제로도 게임 내용에 있어서 주인공은 ‘마리오’이고 ‘소닉’은 주연 배우를 돕는 조연 정도로 출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에 많은 ‘소닉’팬들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속도감 빠진 ‘소닉’의 모습에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빠른 전개의 속도감과 다채로운 월드형의 게임 진행방식이 ‘소닉’ 게임만의 전매특허였다고 한다면, 이 게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소닉’ 게임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 게임에 등장하는 원래는 엄청나게 빨리 달리는 ‘소닉’이 ‘닌텐도’의 캐릭터들에 맞춰 같은(거의 비슷한) 속도감으로 게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소닉이나 마리오나 조건은 동일(실제로는 섀도우 vs 루이지)]


아시다시피 ‘닌텐도’의 ‘마리오’ 게임들은 그렇게 속도감이 있는 게임이 아니다. 애초에 ‘소닉’이라는 게임이 ‘마리오’에 대항하는 의미로 속도감 있는 게임 진행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핵심 컨셉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 거의 전부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마리오 & 소닉 베이징 올림픽 – 실제 속도로 달리면 마리오가 100% 진다!]


극단적으로 혹평하는 분들의 평을 빌리자면 이것은 ‘화해’가 아니라 세가의 ‘몰락’ 이라고까지 표현할 만큼 ‘소닉’의 골수 팬들은 상당히 아쉬워했다.
 
‘세가’의 몰락을 재촉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장

길고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결국 ‘화해’라는 모습으로 ‘닌텐도’ 진영에 ‘소닉’이 발을 들여놓을 수 밖에 없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안으로는 내부 경영진의 복잡한 사정과 밖으로는 그 동안 ‘닌텐도’와 ‘세가’의 양강 구도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새로운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기존에 전자제품이나 만들던(이라고 다들 우습게 봤었지) ‘소니(SONY)’의 ‘PS(플레이스테이션)’의 등장이었다. PS(플스) 초기에는 닌텐도나 세가나 3파전을 예상하고 당황하거나 긴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1997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1997년 1월 대망의 킬러소프트 ‘FF VII(파이널 판타지 7)’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되고 당시 세가의 주력 병기 ‘SS(세가 새턴)’이 400만대를 채울랑말랑 할 시점에 이미 1000만대에 가까운 판매량으로 추월해버렸다(이제서야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된 것인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의 독주는 세가에게만 치명상을 입힌 것이 아니라 닌텐도 역시 크게 한 방 먹고 당황하게 된다. 위기의 세가는 ‘세가타 산시로’라는 캐릭터까지 TV 광고에 내보내면서 고군분투하지만 이러한 세가의 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1997년 말에 가서는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의 판매량은 6배를 넘는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세가는 1997년 말 ‘SS(세가 새턴)’을 포기하고 다음 차기작 ‘드림캐스트’ 프로젝트 신형 콘솔 게임기의 발표를 하게 된다.
 

   
[‘저는 16비트 에요!’]

 

이미 과거에 8비트 시장에서 닌텐도에게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고 16비트 시장에서는 이 굴욕적인 패배를 꼭 복수하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콘솔 게임기 본체에도 ‘16-BIT’ 라고 큼지막하고 빛나는 금색 로고를 새겨놓았지만, 잠시나마 북미시장에서 ‘소닉’을 등에 업고 1위를 탈환한 적이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16비트 시장마저 닌텐도에게 패배하게 된다(그래도 거의 비등했다).
 

   
[‘슈퍼패미컴’은 그냥 ‘슈퍼패미컴’이고 ’16-BIT’따위 새겨 넣지도 않았다.]


8비트 시장에서의 처참한 패배와 16비트 시장에서의 압승을 거두지 못한 아쉬움으로 다음 세대인 32비트 시장은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도전하게 된다. 그 32비트 시장에 내놓은 회심의 병기가 바로 ‘SS’라 불리던 ‘세가 새턴’이다.

‘세가 새턴’은 애초에 ‘3DO’를 상대로 하드웨어 스펙을 준비했고, 실제로도 ‘3DO’만을 상대로 했다면 승산이 있었겠지만,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해 버리고 조급했던 세가는 기존에 진행하던 ‘세가 새턴’ 하드웨어 설계를 대폭 변경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조급했던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 된 하드웨어 변경을 하게 되는데, 특히 듀얼 프로세서 구조의 병렬처리 방식으로의 설계변경은 서드 파티에 참여할 업체들의 실무 개발자들에게 소프트웨어 개발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초기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전체적인 상황은 좋지 않게 진행되고 있었다.
 

   
[힘내라 새턴!]


그래도 발매 초기 ‘버추어 파이터’ 같은 초 기대작 게임을 등에 업고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세가 새턴을 기다리던 게이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작으로 꼽는 게임이 ‘VF(버추어 파이터)’와 ‘데이토나 USA’같은 아케이드 센터(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무리했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 악재가 터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고대하고 기대하던 ‘버추어 파이터’가 초월이식도 모자란 판국에 다운이식이 된 것이다. 이렇게 안으로나 밖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세가에게 생각지도 못한 비보가 날아들었는데, 그것은 닌텐도의 친형제나 다름없던 ‘스퀘어’의 이적 소식이었다.

전통적으로 닌텐도 진영의 돈 주머니 역할을 담당하던 ‘스퀘어(파이널 판타지 개발사)’가 닌텐도와 결별하고 소니와 손을 잡기로 했다는 소식은 세가뿐만 아니라 게이머들에게도 상당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하물며 당사자인 ‘닌텐도’는 오죽했을까?).

지난 8비트 시절과 16비트 시절 닌텐도와 함께 시장을 장악하던 국민RPG의 개발사가 당연히 32비트 시장에서도 닌텐도와 그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세간의 예측을 뒤엎고 닌텐도와 결별을 선언하며 소니(플레이스테이션)의 이적을 발표한다. 게다가 그 이식작품이 ‘FF VII(파이널 판타지7)’이라는 희대의 명작이었기 때문에 이 충격적인 뉴스는 전 세계의 게이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도 ‘닌텐도 64’의 예비 구매 수요자들은 이 타이틀 하나만으로 ‘소니’의 ‘PS (플레이스테이션)’구매를 결정하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결국엔 한 회사로 합쳐졌지만, 당시에는 별개의 회사였던 ‘에닉스’ 그 이후에 ‘드래곤 퀘스트 7’편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하게 되면서 일본의 국민 RPG라 일컬어지는 ‘FF 시리즈’와 ‘DQ 시리즈’는 그 이후 계속해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하면서 닌텐도와 세가가 점령하고 있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결국 32비트 시장마저 전자제품이나 만들던 소니에게 패배하게 된 세가는 이제 제정신이 아닌 지경이 되었다. 차라리 ‘닌텐도’에 밀리면 그렇다 하고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어도 이건 무슨 워크맨이나 TV나 만들던 회사한테도 밀리다니..

   
[비운의 게임기 ‘드림캐스트’]


이제는 닌텐도에 이어 물리쳐야 할 적이 하나 더 늘어 콘솔 게임기 시장은 천하삼분지계와 같은 삼파전의 양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세가는 자사의 게임기 ‘새턴’이 신생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3D 기능의 부족으로 참패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후 등장한 ‘드림캐스트’는 3D 성능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발매 당시 최고의 3D 성능을 자랑하는 정말 이름 그대로 ‘꿈’의 머신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한 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에 의해 고배를 마시게 된다.

당시 게임기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DVD 플레이어로 활용 가능하다는 초유의 장점을 앞세워 많은 예비 신랑의 혼수 품목에도 오를 정도로 ‘플레이스테이션2’는 전작에 이어 인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주변에 ‘자기야 이 나이에 게임기 사기는 그렇고 집에 DVD 플레이어 한 대 정도는 들여놓자’고 한 이들이 틀림없이 있다). DVD 플레이어로 눈속임 한 것은 애교일 뿐이었고, 실상 DVD 매체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기본 4.75GB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용량으로 게임 중간중간 동영상은 물론 고품질의 음원과 OST등의 수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본격적인 대작 게임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세간에는 ‘드림캐스트’가 ‘세가’의 ‘꿈’을 안고 침몰했다는 얘기를 할 만큼 ‘드림캐스트’는 막판에 2001년 1월 31일,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사투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드림캐스트’의 멸망으로 ‘세가’는 참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아케이드 기판(오락실) 게임과 소프트웨어만 만드는 회사로 남게 되었다.

필자의 잡소리
결국 짧게 1회로 끝내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새벽에 글을 쓰다 아침에 참새 친구들을 만나서야 잠이 드는 ‘아침형 인간’의 삶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세가’의 텃밭 아케이드 시장에서 진정 빛났던 ‘세가’의 게임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필자의 어릴 적 꿈이었던 전투기 파일럿의 유일한 유사체험 및 대리만족의 꿈같은 체험형 게임기 ‘애프터버너’를 비롯하여 면허증 없이도 신나게 해안도로를 달리며 열심히 길가에 간판을 때려 박게 만들던 ‘아웃런’ 같은 추억의 게임들에 대해 얘기 해 볼 생각이다.

또한 이번 편에서는 ‘소닉’을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카 유지’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는데, 다음 편에서는 ‘세가’의 체험형 게임기를 얘기하는 만큼 ‘스즈키 유’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까 한다.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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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으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네요.
깊은 내공을 느끼고 갑니다.

(2017-05-17 04: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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