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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외부칼럼
[게임별곡] ‘버추어파이터’, 무술 배우며 만든 개발자의 열정3D 대전액션의 선두주자이자 20년간 사랑받은 세가의 대표작 개발 뒷이야기
정리=서동민 기자  |  cromdan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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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9  11: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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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시즌2 [세가 하(下)-1편] 세가의 황금기

   
[나 아직 살아있다!]
(이미지 출처: http://vf20th.sega.jp/)

 

지난 기사에서 세가의 회사 조직에 대한 소개와 ‘소닉’이라는 캐릭터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와 사투를 벌이던 이야기를 했다. 이번 편에서는 세가의 텃밭이자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아케이드(오락실) 게임 시장에서 세가의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원래 세가는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강자였고, 한 때 황금기라 불릴 만큼 그 세력이 대단했었다. 최초의 체험형 게임 ‘행온’으로 시작해 진화된 3D 게임으로 아케이드 시장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국내 아케이드 시장이 예전만 못한 이유로 세가를 가까이 접할 기회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아쉽다(국내는 이미 PC방이 전체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점령한지 오래다). 국내에서 그나마 예전 오락실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대형 극장가의 휴게실 정도이거나 시내에 있는 몇몇 게임장 정도다.

20~30년 전만 해도 국민학교, 중학교 골목 골목에는 ‘지능계발’ 이라는 간판을 걸고 오락실이 성행했었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 잊혀져 가는 풍경이라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곤 한다. 정문으로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긴급 출동하면 문이 열리는 순간 드래곤볼이 흩어지듯이 너도나도 뒷문으로 냅다 튀던 추억도 이젠 예전의 일이다.(그래도 한 놈 잡히면 줄줄이 굴비 엮듯이 다 엮여갔다).

   
(이미지 출처: http://vf20th.sega.jp/)

 

세가의 3D 게임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은 역사의 게임 ‘버추어파이터 (이하 버파)’에 대한 얘기를 빠트릴 수가 없다. 다른 게임도 많이 있지만, 굳이 ‘버파’를 꼽는 이유는 1993년 최초 출시 당시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자 흥행에도 성공을 거둔 게임으로 세가의 대표적인 3D게임 중에 하나로 꼽는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가에는 이외에도 3D 레이싱 게임과 같은 명작 게임들이 많이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필자의 취향으로 ‘버파’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 볼 생각이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가의 3D 게임 개발 뒤에는 ‘스즈키 유’라는 걸출한 개발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는 게임개발에 있어 기술의 혁신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개발자였다. 이것은 닌텐도의 ‘수평적 사고’와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닌텐도가 출시 당시 기준으로 그리 높지 않은 하드웨어 성능에 아이디어를 통해 재미라는 요소에 집중했다면, 세가의 스즈키 유는 혁신적인 기술로 가장 앞선 성능을 중요시하며, 이것이 세가의 3D 게임 개발의 핵심 요소였다. 실제로 스즈키 유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독불장군 같은 고집쟁이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현실 같은 느낌의 게임을 만들려다 보니 정해진 예산은 언제나 초과됐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처리 부분에서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기에 고위 간부진에서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출시하는 족족 성공을 해버리는 바람에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정말 ‘행온’이나 ‘아웃런’, ‘애프터 버너’가 줄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자기 돈 아니고 회사 돈이라고 펑펑 써대는 불온한 망나니라는 불명예를 안고 게임 업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셴무’로 한 방 터트리긴 했지만)

문제는 그가 만든 게임들이 줄줄이 성공했다는 것이고, 스즈키 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술의 제한적인 요소로 눈속임 같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진짜 3D의 세계를 원했다. 체험형 게임기로 아케이드 시장을 석권하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가 원하는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판이 만들어지자, 스즈키 유는 새로 개발 된 ‘MODEL 1’ 이라는 기판으로 본격적인 3D 게임 개발에 앞서 실험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그냥 테스트 용도로만 쓰기에는 너무나 잘 만들어져서(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용 버전으로 출시 된 게임이 세계 최초의 3D 레이싱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버추어 레이싱’이다. 그가 만드는 게임들은 거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부여 받았는데, 최초의 체험형 게임기 ‘행온’ 외에도 최초의 3D 레이싱 게임으로 불리는 ‘버추어 레이싱’이 그것이다.

하지만 ‘버추어 레이싱’이라는 게임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세계 최초의 3D 레이싱 게임’이라는 타이틀 보다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게임 안에 등장하는 크루(Crew)의 완성도를 보고 이 정도의 캐릭터 구현이라면 ‘버추어 파이터’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고 스즈키 유가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움직이는 3D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고, 이 정도 캐릭터 구현 수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버파’도 없었다.]

 

그가 애초에 만들고 싶었던 것은 2인 대전액션 게임이 아니라 여러 명의 선수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3D 스포츠 게임이었다. 문제는 당시의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MODEL 1’기판도 그 정도 하드웨어 성능을 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러 명의 선수가 뛰어 다니는 게임 개발이 불가능하다면 2명이 싸우는 대전액션 게임을 만들자!’로 계획이 수정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버파’라는 게임이다. 때문에 ‘버추어 레이싱’이라는 게임이 아니었으면 결국 ‘버파’라는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VF 1’이라고 써 있는 세가의 MODEL1 ‘버추어 파이터 1’ 기판]
(이미지 출처: http://www.tvspels-nostalgi.com)

 

이 기판으로 스즈키 유는 현실과 같은 게임 개발의 꿈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게임 역사에서도 많은 의미가 있는 기판이며, 현재도 골동품을 발굴하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마음으로 이 기판을 구하는 골수 유저가 많이 있다(필자도 아직 못 구했다).

 

■ ‘버추어 파이터 1’

스즈키 유가 본격적인 3D 게임 개발에 사용한 ‘MODEL 1’ 기판은 세가가 1992년 개발한 새로운 아케이드 기판이다. 이 기판으로 ‘버추어 레이싱’을 출시하고 ‘버파’까지 출시했지만, 기판의 가격이 워낙 고가인 덕에 실제 게임은 6개 밖에 출시되지 않았고, 바로 ‘MODEL 2’의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개발비가 아깝긴 하지만 세가는 이 기판을 통해 전 세계를 깜짝 놀랄만한 3D 게임을 만들었고, 그에 대한 대가로 ‘버추어 레이싱’에 사용된 시점변경에 대한 기술에 대해 특허를 인정받게 된다(이 정도면 기술 개발비 퉁칠만한가?). 이 기판이 개발된 1992년은 게임 업계 역사상 세계의 게임 역사가 바뀌게 된 해로 기록되기도 했을 만큼 ‘MODEL 1’이라는 기판이 안겨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세가 내부적으로는 일이 이상하게 꼬여 돌아가고 있었다. 기판이 개발되던 당시에 세가의 콘솔 게임기 사업부와 아케이드 게임 사업부는 서로간의 긴밀한 업무협조가 이루어지기보다는 각자가 다른 꿈을 꾸며 따로 놀고 있었다는 점이다. 스즈키 유를 주축으로 한 아케이드 게임 사업부는 콘솔 게임기 사업부와 긴밀한 협조나 상의 없이 ‘MODEL 1’이라는 기판을 사용하여 ‘버추어 레이싱’게임을 만들더니, 바로 다음으로 사상 초유의 ‘버파’라는 3D 대전액션 게임까지 만들어버렸다.

   
[‘까짓 거 우주를 정복해 버려!’]
(이미지 출처: NASA)

 

이 당시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들은 자사의 콘솔 게임기로 이식되는 것이 당연시 여기던 시절이었고, ‘버파’ 역시 차세대 콘솔 게임기로도 당연히 이식이 될 것이라는 유저들의 소망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데없는 3D 대전액션 게임에 세가의 콘솔 게임 사업부는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세가의 콘솔 게임기 사업부는 두 팀으로 나뉘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새턴(토성)’ 이라는 CD-ROM 탑재형 게임기이고 또 하나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라진 ‘쥬피터(목성)’라는 카트리지형 게임기 사업팀이다. 이 외에도 세가에는 ‘마르스(화성)’ 프로젝트도 있었다. 후에 ‘쥬피터’는 ‘마르스’에 흡수되어 32X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 세가의 게임기 사업부 프로젝트를 ‘플래닛 프로젝트’라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부서별로 난립하던 시기에 세가 내부에서는 아케이드 게임 사업부에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사업부로 부서이동이 되면 좌천됐다고 여길 정도로 부서간에 긴밀한 협력보다는 부서간의 견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도 세가의 황금기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보다는 아케이드 시장에서 그 빛을 발휘했으니 회사 내부에서 아케이드 사업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긴 하지만, 어쨌든 어지러운 회사 내부 사정에도 불구하고 ‘버파’는 어렵게 ‘새턴’으로 이식이 됐고, 초기 ‘새턴’ 판매량의 일부는 ‘버파’를 집에서도 하고 싶어하는 열혈 유저들이 많이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필자의 친구도 그렇게 새턴을 구매했다).

   
[정확히 1.67초 뒤에 나는 하늘을 보며 누워 있겠지.. (켄)]

 

하지만, ‘버파’를 개발한 스즈키 유도 처음부터 대전액션 게임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아닐뿐더러 대전 액션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1992년 당시에 세상은 이미 ‘스트리트파이터2(이하 스파2)’라는 게임이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다(1991년 2월 출시). 이미 수많은 도전자들이 ‘스파2’라는 상대를 이기고자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지만, 어느 하나 ‘스파2’이상의 성공을 거둔 게임이 없었다. 도전자들이 실패할 때마다 ‘스파 2’는 2D 대전액션 게임의 절대강자이자 지존으로 대전 액션 게임의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즈키 유는 회사를 상대로 새로운 대전액션 게임 개발에 대한 제안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부터 고위 간부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분야의 게임을 개발할 스태프들을 모집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실제 스즈키 유는 회사 내부의 고위 간부들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는 부분보다는 개발팀 자체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고민했다. 간부들이야 플레이 시간대비 비약적으로 늘어난 동전의 양 하나만으로도 설득하고 남음이 있었지만(‘스파2’봐라, 동전이 하루에도 얼마나 쌓이는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저 동전 괴물 ‘스파 2’를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개발팀 내부의 고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틈새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2D가 아닌 3D로의 변화였고, 이렇게 ‘버파’는 처음부터 3D에 최적화된 설계를 목표로 진행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2D 캐릭터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비슷한 시기에 남코(NAMCO)에서도 ‘철권(태켄)’의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둘은 그 이후 3D 대전액션 게임의 맞수로 피 터지는 싸움을 하게 된다. 사실 세가 내부에서도 고위급 임원진들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개발비 정도는 뽑을 자신이 있다(‘스파2’봐라, 동전이 얼마나 쌓이는지)는 말에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개발팀이 어떻게 ‘스파2’를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면 됐지만, 사실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따라 하지 마시오!’]

 

최초의 ‘버파’는 1993년 ‘MODEL 1’ 기판으로 출시됐는데, 지금 보면 투박한 폴리곤 모델들이 오래 전의 구석기 시절 게임임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에 ‘깍두기’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을 정도로 폴리곤들이 눈에 띄게 투박하지만, 이 정도의 그래픽만 해도 실제로 3D 모델을 구현해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놀라운 기술이었다. 그리고 왠지 뭔가 더 CG같은 느낌이 있었다. 처음 게임 화면을 본 사람들은 놀랍다는 의견과 그래픽이 이게 뭔가 하는 의견으로 갈렸지만, 게임을 해보게 되면 투박한 그래픽과는 달리 뭔가 사실적인 움직임과 실제로 치고 맞고 하는 느낌(타격감)에 저절로 동전을 게임기에 집어넣는 최면에 빠져들었다. (정신차리고 보니 엄마가 콩나물하고 두부 사오라고 준 돈을 다 써버렸다던가..)

   
[필자가 좋아하던 야경]
(이미지 출처: 유투브)

 

이것은 스즈키 유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이 빛을 발한 부분으로, 스즈키 유는 게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그 느낌을 체험하고자 개발팀원에게 실제로 자신을 때려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실과 같은 느낌의 때리고 맞는 느낌을 게임에 살려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온몸에 피멍이 들고 타박상과 근육통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게임의 사실적인 움직임은 더욱 개선되어 갔다.

국내에는 1994년쯤에 오락실에 배포되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비싼 고가의 기계였던 탓에 필자가 사는 동네 오락실에서는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필자는 동네 오락실 주인 아저씨와는 피는 섞이지 않아도 상당히 많은 자본의 교류(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투입)로 인해 거의 친인척과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버파’ 기계 좀 들여놔 달라는 필자의 부탁을 끝내 이뤄주지 못했다. 그래서 ‘버파’를 하기 위해서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큰 오락실에 가야 했는데, 당시 다른 게임들이 100원 하던 것에 비해(그것도 이전에는 50원이었는데!!) ‘버파’는 당시에 500원이나 했었다! (서울 어디선가는 300원이면 된다던데) 당시 컵라면이 300원 정도 했는데 게임 한판을 하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이 상당히 부담이 됐었다.

 

■ ‘버추어 파이터 2’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MODEL 1’으로 출시 된 ‘버파’에 이어 1년 뒤 1994년 ‘버추어파이터2’가 출시되었는데, 이 게임은 이전 게임 버전에 맞춰 기판 버전도 2라는 숫자를 단 ‘MODEL 2’ 기판이었다. ‘버파 2’는 사실상 ‘버파’라는 게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흥행에 성공한 게임이다(1편보다 엄청 더 많이 성공했다).

   
[‘야 더 올려봐 안 보여’]
(이미지 출처: http://www.hardcoregaming101.net/virtuafighter/)

 

아케이드 게임 시장뿐만 아니라 그 인기를 여세로 각종 가정용 콘솔 게임기와 PC 버전으로도 출시 된 몇 안되는 멀티 플랫폼 게임이기도 하며, ‘세가 새턴’ 게임기로 이식된 자사의 게임 중에 밀리언 셀러로 기록 된 게임이기도 하다. 그 당시 오락실에서 누군지 모를 매일 바뀌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집에서 수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가 새턴’ 게임기를 구입한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쉽게도 당시의 필자는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 되지 못한 슬픈 가정 환경으로 가정에서는 수련을 행하지 못하였다(인생은 언제나 실전!).

   
[‘안 되면 소림사까지 가!’]
(이미지 출처: 유투브 –Yu Suzuki's Shenmue Postmortem(GDC 2014))

 

전작 ‘버파’에 이어 출시된 ‘버파2’는 더욱 더 사실적인 움직임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사실 그래픽적인 변화는 천지가 개벽한 것만큼의 느낌은 아니었다. 여전히 폴리곤(다각형)이 느껴질 만큼의 조금은 투박한 그래픽이었지만, 그래도 전작에 비해 상당히 부드러워지고 묘사가 섬세해졌으며, 특히 배경화면이 많이 사실적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버파2’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단지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현실에서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움직임이 주된 이유였다. 여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스즈키 유는 ‘버파2’를 개발하면서 보다 더 사실적인 움직임 구현을 위해 직접 무술을 배우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일본 내에서 부족함을 느껴 결국 무술의 성지 중국까지 날아가 여러 도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무술을 배워 스태프끼리 대련을 펼치기도 했었다. 소림사에까지 찾아가서 무술 교육을 받았을 정도이니 얼마나 사실적인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집착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의 게임 개발의 집착은 캐릭터의 움직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버파’를 개발하기 위해 사용된 그래픽 기술 중에 하나가 지금은 흔히 쓰이는 ‘텍스처 맵핑’이라는 기술인데, 그 당시에는 생소한 용어의 기술이었다. 원래는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기술로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중년 소리를 듣는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쓰던 기술이다. 소련의 해체(지금의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와 함께 민간기업으로 이전됐고, 스즈키 유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버파2’ 개발에 도입했다. 덕분에 ‘버파2’는 다시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우리들의 주머니가 탈탈 털리는 속도는 더욱 더 가속화되었다.

   
[자기 이름만 대따 크게 새겨놨어..]
(이미지 출처: ‘버파 2 엔딩 크레딧’)

 

이렇게 갖은 고생 끝에 세상에 내놓은 ‘버파2’는 전작에 이어 다시 한 번 3D 대전액션 게임의 선두주자이자 최고의 위치에 군림할 수 있게 되었고, 1994년 12월 9일 ‘철권(태켄)’이 나오기 전까지 최고의 3D 대전액션 게임의 자리에 있었다. 그 이후로 두 게임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면서 ‘버파’ 시리즈 역시 거듭하며 진화해 나가게 되는데, 1990년대 ‘스파2’를 따라 잡기 위해 너도 나도 비슷한 2D 대전 액션 게임을 만든 것처럼 90년 중반 이후에는 이제 ‘버파’를 잡기 위해 너도 나도 3D 대전액션 게임을 만들게 된다. 즉, ‘버파’라는 게임은 이제 하나의 장르를 점령하며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는 선두주자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 ‘버추어 파이터 3’

필자에게 있어 ‘버파3’는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게임이다. ‘버파 1’이나 ‘버파 2’는 당시 필자의 신분이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완수해야 하는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깊이 있게 즐길 여력이 안되었지만, ‘버파 3’가 출시될 쯤에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맘대로(인줄 알았지..) 돌아가는 완벽히 자유로운 상태였기에 하루 종일 오락실에 처박혀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 인생의 황금기였다(사실 황금기 인줄 알았지만, 오락실엔 ‘버파3’가 PC엔 ‘디아블로’가 그렇게 학사경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집에 왔니? 이제 나랑 놀아야지?’]

 

대학시절 만난 친구 두 명은 아직까지 연락하면서 지내는데, 불혹에 접어든 지금도 셋이 모이면 늘 ‘우리 이제 뭐하지?’하는 변함없는 레퍼토리와 따분한 일상의 주인공들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처럼 ‘버파3’라는 게임이 나타났고, 그렇게 서먹하던 신입생 초기에 우리들은 ‘버파3’를 하며 서로의 주머니가 털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동병상련의 우정을 키워나갔다. 그 뒤로도 직장인 새내기가 되고 200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서로 만났을 때도 변하지 않던 레퍼토리는 근처 오락실을 찾아 ‘버파’ 대련을 하는 것이었다.

   
[친구1의 주 캐릭터 – 파이]
(이미지 출처: https://badoorsnk.wordpress.com)

 

참고로 필자의 주 캐릭터는 ‘사라’ 이고 친구 한 명은 ‘파이’ 나머지 한 명은 ‘잭키’ 이렇게 각각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서로 다른 캐릭터로 거의 몇 년을 미친 듯이 동전을 쏟아부었다(아이고 의미 없다. ‘세가’만 배 불렀지). 그 때 같이 배고픈 배를 주려 잡고 가상현실에서 서로의 권(拳)을 주고 받으며 매일 같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필자와 친구들은 그렇게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버파3’의 즐거움과 맞바꾸며 살고 있었다. 필자와 친구들을 빠져들게 한 ‘버파3’는 곧바로 ‘버파3 TB(Team Battle)’이라는 버전으로 다시 출시됐고, 1 vs 1 대전만 가능했던 전작들에 비해 3 vs 3 이라는 새로운 팀 배틀 형식의 대전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팀 배틀 형식으로 바뀐 것 외에도 판정 기준이라던가 하는 부분들이 세세하게 변경됐다. 필자는 주로 ‘사라’, ‘파이’, ‘아오이’ 캐릭터로 여성팀을 구성했다.

   
[아씨.. 내가 이런 거나 보려고 돈 넣은 줄 아나..]
(이미지 출처: https://vignette1.wikia.nocookie.net)

 

제일 고르기 싫었던 캐릭터로는 3편에 출연했다가 그 이후 종적을 감추고 다시 5편에 등장하는 ‘타카 아라시’라는 스모 선수 캐릭터였다. 이 캐릭터를 선택하는 친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최악의 경우 1P, 2P 모두 ‘타카 아라시’를 선택하면 화면 전체가 살색으로 변하는 므흣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스파2’의 ‘혼다’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인데, 선택 비중은 높지 않았다. 유일하게 이 캐릭터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1인칭 시점으로 변경해서 상대 캐릭터를 잡기 기술로 흠흠.. 실제 해보셨거나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신 분이라면 무슨 얘기인지 잘 아실 것이기에 굳이 자세히 쓰지는 않도록 하겠다(어쨌든, 한국에서는 큰 인기가 없는 비운의 캐릭터였다).

   
(이미지: https://www.supermodel3.com)

 

‘버파3’는 당시 최고의 기판이던 ‘MODEL 3’기판으로 개발/출시되었으며, 이 기판의 성능은 전작의 게임들을 가뿐하게 밟을 정도로 획기적인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다. ‘100만 폴리곤’이라는 광고문구가 아니더라도 눈에 띄게 그래픽적인 부분도 변화했다. 특이한 부분은 군사복합체인 미국의 록히드 마틴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합작한 GPU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최초 버전인 STEP 1.0에서 이미 100만 폴리곤(사각형 폴리곤의 경우 100만, 삼각형 폴리곤의 경우 200만)을 지원했다. 계속된 개량으로 STEP 2.0/2.1까지 개발됐었다.

   
[극한의 성능을 자랑했던 ‘MODEL 3’기판]
(이미지: http://segaretro.org/File:Model3_fullboard.jpg)

 

‘MODEL 3’에 이르러서는 ‘세가’의 콘솔 게임기 사업부에서도 화를 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새턴’의 후속 기종으로 ‘드캐(드림캐스트)’를 준비하던 콘솔 게임기 사업부는 아케이드 게임 사업부의 ‘MODEL 3’ 게임들을 보고 이걸 어떻게 이식하느냐고 화를 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하드웨어 스펙으로 비교하자면 ‘MODEL 3’후속으로 등장한 ‘NAOMI(New Arcade Operation Machine Idea)’ 기판의 경우 ‘드림캐스트’와 비슷한 구조로 설계한 기판이지만, 먼저 개발된 ‘MODEL 3’보다 성능 면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후에 ‘NAMOI 2’에 가서야 ‘MODEL 3’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버파4’가 ‘NAMOI 2’로 출시되게 되었다. 당시 뜬금없는 코나미(KONAMI)의 ‘SYSTEM COBRA’라는 기판이 있었는데, 세가의 ‘MODEL 3’를 능가하는 스펙을 지니고도(자기네 광고에 의하면 그렇다 함). ‘파이팅 우슈’라는 게임 하나 덜렁 만들어 놓고 사라진 비운의 기판이다. 제대로 맞붙었으면 볼만했을 것인데, 그 시절에 ‘MODEL 3’를 능가할만한 것이 존재하기 힘들게 만든 건 기판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거기에 제대로 된 S/W에 힘이 더 컸지 않나 싶다. 그 대표적인 S/W가 바로 ‘버파3’라는 게임이다(‘세가 랠리’도 한 몫 했지만..).

   
[극한의 성능을 자랑했던 ‘MODEL 3’기판 광고 – 100만 폴리곤을 자랑하는 글이 보인다.]
(이미지: http://flyers.arcade-museum.com)

 

이렇게 연일 화제가 됐었던 최고사양의 새로운 기판 ‘MODEL 3’와 ‘버파 3’의 궁합은 사상 최고의 흥행실적을 달릴 줄 알았으나, 실제 이 시점부터 ‘버파’는 최고의 변곡점을 찍고 서서히 사양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미 이 때쯤에는 숙명의 라이벌 ‘철권(태켄)’게임의 도약이 두드러진 시기이기도 하다.

후발주자였던 ‘철권’은 ‘버파’에 비해 엄청나게 다양한 캐릭터와 연속 연계기(콤보)를 통한 박력있고 빠른 공격과 현란한 특수효과 등을 선보였다. ‘철권’은 초보 유저들을 무서운 속도로 흡수하기 시작했고, 점점 사실성에 근접해가며 현실성 있는 격투게임을 지향하는 ‘버파’의 경우 이제는 초보자가 하기에는 조금 어려워져 가는 게임이 되고 있었다.

‘철권’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 있을법한 일이라던가 사실적인 물리법칙 등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액션 게임이라는 부분에 집중해 영화나 만화에서 본 것만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심지어 어느 부분에서는 이런 점들이 오히려 더 액션 게임 유저들에게 환영받기도 했다. ‘철권’이 오락실에서 점점 ‘버파’를 밀어내고 더 많은 숫자로 채워지기 시작한 때가 이때쯤부터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꾸준히 ‘철권’ 시리즈가 등장하고, 극장의 오락실에 가도 ‘버파’는 없지만 ‘철권’은 꼭 한 두 대씩 있는 걸 보면 최후의 승자는 ‘철권’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필자에게 ‘버파’라는 게임은 20년 넘게 오래도록 아끼고 즐겨온 게임이고, 이 게임 덕분에 인생에 소중한 두 친구를 얻었으니 여러모로 의미가 큰 게임이다. 그래서 이미 흥행 부분에서는 ‘철권’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지만 필자는 여전히 ‘버파’의 팬이다.

 

■ 필자의 잡소리

필자의 인생 게임이라고 할 만한 ‘버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새는 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하지만, 또 분량 문제로 나머지 ‘버파4’, ‘버파5’나 본편에서 얘기했어야 하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얘기 해야 될 것 같다. ‘버파’ 게임의 개발자 스즈키 유조차 실제 시연하는 걸 보고 경악하게 만든 ‘코리안 스텝’을 세상에 널리 알리며 유명해진 ‘꼬마 아키라’ 이야기라던가, ‘MODEL O’기판에 이어 ‘NAMOI’로 이어지다가 ‘린드버그’로 넘어가는 ‘세가’의 아케이드 기판 개발 이야기 등에 대해 해 볼 생각이다. 언제나 세가의 게임 하드웨어 사업을 보면 늘 세상보다 한 발 앞서가는 느낌인데, 아쉬운 점은 혼자만 앞서가다 보니 세상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이 잠바를 20년째 구하고 있지만 못 구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fightersgeneration.com/)

 

그래도 아직 아케이드 센터에서 파란색 로고의 ‘SEGA’라는 글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말고 일본 얘기) 비록 본업과는 조금 동떨어진 업체와 인수합병 하여 세가 내부적으로도 뭔가 정리가 안 된 것 같은 느낌이지만, 필자는 언제나 세가를 응원한다. 따지고 보면 세가 덕분에 필자는 인생에 절친 두 명을 얻었지 아니한가.

게임톡 정리=서동민 기자 cromdan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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