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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게임별곡
[게임별곡] 오락실에 불어닥친 혁명, ‘스트리트파이터2’슈팅과 아케이드 몰아내고 열린 대전액션게임 전성시대
서동민 기자  |  dmseo80@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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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3  13: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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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시즌2 [캡콤 2편]

■ 새로운 장르의 출현 – 스트리트파이터

지난 편 캡콤(CAPCOM)이라는 회사의 소개 글에 많은 분들이 ‘스트리트 파이터’에 대한 추억을 댓글로 남겨주셨다. 캡콤이 1979년 설립되었으니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1’을 실제로 해 보거나 구경이라도 해 본 분들이라면 아마도 1970년대 출생이 많을 것이다. 그 시절 오락실에 다니던 꼬마가 현재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고, 캡콤은 우리가 유년 시절 즐겁게 하던 게임들을 만들면서 우리와 같은 시절을 공유하는 회사가 됐다.

   
[1983년 오락실 풍경]
(이미지 – https://namu.wiki/w/%EC%98%A4%EB%9D%BD%EC%8B%A4)

위 사진은 1983년 경향신문이 취재한 오락실의 풍경이다. 1980년대 초기 오락실에는 ‘갤러그’ 같은 슈팅 게임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 이후 ‘너구리’, ‘테트리스’ 같은 간단한 게임들이 많이 출시되었다. 그 당시 필자가 제일 많이 했던 게임들은 ‘탱크(독수리 요새)’, ‘이카리’, ‘혼두라’, ‘보글보글(버블보블)’, ‘쟈칼’, ‘너클조’, ‘시노비’, ‘미드나이트’, ‘원더보이’, ‘더블드래곤(쌍용권)’, ‘블랙드래곤’, ‘파이날 파이트’, ‘에어리어 88’ 등의 게임들이었다. 아마 당시에 오락실을 드나들던 친구들은 대부분 자주 하는 게임 중에 저 게임들이 한 두 개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1980년대 게임들의 특징이라면 주로 혼자서 하는 게임들이 많았고, 2인용 게임의 경우에도 둘이 협력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때에도 사람과 사람이 대전한다는 개념의 게임들은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미비했다. ‘가라데 챔프’나 ‘이얼쿵푸’ 같은 게임이 있었지만 ‘가라데 챔프’는 너무나 일본색이 짙었고 ‘이얼쿵푸’는 너무나 중국색이 짙은 게임이었다.

물론 특정 국가를 소재로 한 것이 게임의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이얼쿵푸’는 동네 오락실에서 많이 보이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라데 챔프’가 흥행이 저조했던 이유는 ‘스트리트파이터 1편’과 마찬가지로 조작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번거롭고 힘들게 조작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얻는 즐거움이 적었다. 

그 당시 대전액션게임들은 오락실 업주들에게도 그리 환영받지 못했는데, 고장이 빈번하게 일어나서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돈이 유저들이 넣는 동전보다 더 많이 들 정도였다. 조작이 어렵다 보니 기술 발동이 쉽게 되지 않아 레버를 무작위로 막 돌리다 어쩌다 얻어 걸리는 기술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락실에 레버나 버튼이 멀쩡한 기계가 없을 정도였다.

   
[1980년대 오락실 레버(스틱)]
(이미지 – https://www.ebay.com.au/itm/)

저 놈의 스틱을 들었다 놨다 뽑을 듯이 돌리고 비비니 성할 날이 없었고, 긴박한 순간에 오락실 주인 아저씨를 애타게 찾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애타게 아저씨를 찾으면 아저씨는 어디선가 커다란 십자 드라이버를 가져와서 레버가 있는 판을 들어내어 뒤집고 간혹 납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버튼이 눌려지지 않거나 눌러도 반응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미친 듯이 버튼을 누르고 기술 발동을 위해 어렵게 레버를 조작해야 되는 게임들을 업주들이 반기지 않았었다.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대한민국은 한바탕 격변을 겪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 유례없는 인기 아이돌 그룹이었다. 지금 여기에 그들이 등장하던 그 시기를 기억하는 글을 아무리 잘 써보아도 실제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분들에게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전달할 자신이 없을 정도다. 그냥 끝판왕 정도라고 봐도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TV에 등장하던 때 필자는 중학생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온통 서태지와 아이들 얘기뿐이었다. 기존에 없었던 그리고 여지까지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에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10대 아이들은 열광했고 10대부터 20대까지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당시에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무대에서도 기성세대였던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그렇게 후하지는 않았었다. 1992년 4월 11일 ‘특종 TV연예’라는 프로그램에서 데뷔를 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무대가 지금도 기억난다. 보고 그 당시 가수 전영록만이 후배 가수였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의 활약에 기대를 한다는 말을 했고, 다른 심사위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식견 있는 평가를 자랑했지만 그것은 두고두고 흑역사가 되었다. 그 때 전영록은 “평가는 시청자들이(대중)이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결국 한 달도 안 돼서 ‘난 알아요’는 각종 가요 프로그램 1위를 달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현실 세계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충격만큼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이었던 게임 세계에서도 그 이상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스트리트파이터2’의 등장이다. 당시 트로트와 발라드가 대세였던 한국 가요계에 전혀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들고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슈팅과 아케이드 일색이던 게임 업계에서 새로운 대전액션게임이 나온 것이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게임계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할만하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이미지 – http://yokoshimomura.com/street-fighter-ii-the-world-warrior-soundtrack/)

1990년대의 세상을 가히 저 사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 할 수 있을 정도로 온 세상을 도배하다시피 한 게임이 바로 ‘스트리트파이터2’다. 게임 출시 이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소재로도 쓰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성룡 역시 춘리 캐릭터로 영화에 등장했을 만큼 동아시아는 물론 북미, 유럽을 거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이 되었다. 그렇게 1990년대는 기존에 없었거나 기존에 있었지만 대세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들에서 폭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전혀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 스트리트 파이터 - 세상을 지배하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이미지 – https://vignette.wikia.nocookie.net/streetfighter/)

1990년대 초 돌연 등장함과 동시에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게임인 ‘스트리트파이터2’는 캐릭터 선택의 폭 역시 전 세계 캐릭터를 염두에 둔 설정으로 동아시아는 물론 중국, 북미, 인도, 유럽을 시작으로 점차 전 세계적으로 해당 국가의 캐릭터를 추가하였다. 

하지만, 이 게임의 최고 주인공을 꼽으라면 시리즈 내내 ‘류(RYU)’와 ‘켄(KEN)’ 이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것은 ‘스트리트파이터2’를 개발한 핵심인물이었던 오카모토 요시키 캡콤 전무이사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오카모토 요시키 전무이사는 전편에 소개했던 캡콤의 슈팅 게임 ‘1942’를 시작으로 ‘파이날 파이트’를 개발한 캡콤의 핵심 인물이다. 2003년 캡콤을 퇴사한 그는 2013년 ‘몬스터 스트라이크’라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아케이드 게임 개발자로 시작해서 콘솔 게임기 시장과 모바일 게임 시장까지 3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에로’ 게임과 ‘파칭코’ 게임까지 5관왕을 노린다는 말을 할 정도로 기인 중에 한 명이다.

   
[오카모토 요시키]
(이미지 – http://residentevil.wikia.com/wiki/Yoshiki_Okamoto)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스트리트파이터2’의 개발자 오카모토 요시키는 캡콤 이전에 코나미라는 회사에서 게임 개발자로 일했다는 사실이다. 198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코나미에 입사했던 오카모토 요시키는 코나미의 윗사람들과의 마찰을 자주 일으켰다. 결국 꼰대 경영진 꼴 보기 싫다며 코나미를 때려 치더니 그 당시 이름도 없던 신생기업 캡콤에 입사해버린다. 

현재 캡콤 출신의 유명한 게임 개발자들 중에는 ‘록맨’의 이나후네 케이지, ‘바이오 하자드’의 미카미 신지 등이 있다. 이들이 유명 게임을 개발하고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오카모토 요시키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업계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후한 편이다. 코나미는 두고두고 오카모토 요시키를 놓친 것을 후회하는 한편 그에 대한 배신감(?)도 상당히 강해서 아직까지도 오카모토 요시키는 친정이었던 코나미에 출입금지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오카모토 요시키가 코나미 재직시절 개발한 1982년 ‘타임 파일럿’이나 1983년 ‘자이러스’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두 게임 모두 그가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그를 소홀히 대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불과 22세의 혈기왕성하던 그는 그런 회사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개발부의 전권을 일임한다는 츠지모토 켄조의 입사권유로 캡콤에 입사하게 된다. 

캡콤은 그 당시 개발자가 2명 밖에 없던 신생 회사였고 전체 직원도 아직 8명 밖에 없었다. 그는 캡콤에 9번째 사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어찌보면 캡콤에게 낚인 것일 수도 있으나, 이전 회사인 코나미와는 다르게 개발에 관련된 전권을 일임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였던 오카모토 요시키는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게 되고 캡콤 안에서 그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캐릭터 추가]
(이미지 – https://vignette.wikia.nocookie.net/streetfighter/)

오카모토 요시키는 캡콤에 입사한 이후 슈팅게임 ‘1942’를 통해 그 능력을 입증했지만, 너무 성공에 자만했는지 이후 후속타가 없어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국내에는 ‘쌍용권’으로 더 유명한 ‘더블 드래곤’을 보고 눈이 번쩍 뜨이게 된다. 게임의 인트로 부분 연출이나 무릎으로 찍고 팔꿈치로 치는 기술 등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격투 장면을 보고 전율하면서, 이제 앞으로는 단순한 슈팅이나 아케이드게임보다는 영화와 같은 스토리 전개와 그에 걸맞은 액션 장면이 있는 게임이 성공하게 될 것이라 직감하게 된다.

   
[더블 드래곤]
(이미지 – https://www.caveofpixels.com/double-dragon.html)

비록 타사의 게임이지만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자신이 개발한 ‘파이날 파이트’의 인트로 부분에서도 이를 차용하게 된다.

그 당시 액션 게임들은 비록 소재나 기술 등은 영화와 유사했지만, 전체적으로 영화와 같은 스토리와 게임을 전개하는 진행 방식 등은 단순했다. 그래서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특정 위치에 있으면 맞지 않는 자리나 특수한 아이템이 나오는 자리 등 정해진 패턴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하지만 ‘더블 드래곤’에서는 다양한 기술과 연계 기술 그리고 1P와 2P의 협동 공격, 유인 등을 통해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영화에 몰입하듯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게임의 엔딩 부분에서는 두 남자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된다(궁금하신 분은 직접 해보시길).

   
[파이날 파이트]
(이미지 – https://vignette.wikia.nocookie.net/streetfighter/)

오카모토 요시키는 ‘더블 드래곤’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새로운 게임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는데, 주인공을 두 명으로 하면 너무 티가 날 것 같아서 더블 드래곤 보다 주인공 캐릭터를 1명 더 추가해서 3명으로 했다. 바로 ‘파이날 파이트’다. 본래 ‘파이날 파이트’는 캡콤의 초기작 ‘스트리트파이터1’의 후속편을 개발하려다가 당시에 CPS 보급률이 낮은 관계로 제작을 미루게 되면서 그 사이 공백기를 메울 작품으로 탄생한 게임이다. 그래서 본래의 이름도 ‘파이날 파이트’가 아니라 '스트리트파이터89'라는 번외편 같은 이름이었다. 

이 게임으로 미국의 아케이드 시장을 공략하려던 캡콤은 게임이 완성되자마자 자신만만하게 미국 땅을 밟지만 여기서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한국에서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던 ‘스트리트파이터1’이 미국 아케이드 센터에서 크게 흥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상과는 달리 ‘스트리트파이터1’이 미국에서 잘 팔리는 것을 본 캡콤 경영진은 ‘파이널 파이트’에 한참 집중해야 될 시기에 ‘스트리트파이터’의 후속편 개발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이날 파이트’가 그냥 의미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이 게임 역시 오락실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향후 개발 되는 벨트스크롤 방식의 액션 게임들의 기초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캡콤은 이후 등장하는 ‘천지를 먹다’, ‘캐딜락&디노사우르스’, ‘캡틴 코만도’ 등에서 ‘파이날 파이트’의 완성된 시스템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된다.

‘파이날 파이트’는 이렇게 또 다른 계보를 이어가며 캡콤의 효자 상품이 되었지만, 캡콤 경영진의 마음 속에는 ‘물 들어 올 때 노 젓는다’고 ‘스트리트파이터1’이 불 붙었을 때 그 후속편을 만들 계획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계획을 위해 당시 미국에서 잘 나가던 코나미의 슈팅, 액션 게임들을 견제하고 새로운 전설을 쓰게 할 적임자를 임명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젊은 시절 코나미에게 홀대 받고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아 있던 오카모토 요시키였다.

그리고 10개월 뒤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게 된다. ‘↓↘→ + P , ↓↙← + K, ←↙↓↘→ + P’ 같은 레버(스틱)고장 잘 나게 싶은 기술표를 들고...

(다음 편에 전설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2부가 연재됩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서동민 기자 dmseo80@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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