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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게임별곡
[게임별곡] 삼대가 즐기는 한국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대한민국, 블리자드의 RTS ‘스타크래프트’ 왕국이 되다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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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9  15: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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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시즌 2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

게임으로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일에는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다양하게 많은 일들이 작용을 하겠지만, 단지 하나의 게임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국가 단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지만, 여기 실제 사례가 있다. 바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다.

   
[Starcraft]
이미지: 유투브(/watch?v=jr2MDSdxcsA&t=3804s)

우리 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게임을 한 번도 해 본적은 없어도 TV에서 하도 방송을 해서 구경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이지만,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수많은 게임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서 거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림하고 있는 불사신과 같은 존재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인기가 지나칠 정도로 넘쳐난다. 게다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인기가 지속될 지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수많은 게임 업체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임은 그렇게 많지 않다(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하물며 하나 하나의 인생이 모인 국가 단위에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게임은 드물다. 아니 드물다기 보다는 ‘스타크래프트’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게임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는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3대가 걸쳐 하는 게임”으로도 기록에 올라 있을 정도로 연령에 관계없이 폭 넓은 인기를 얻었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발매되었을 때 50~60대 이상이었다면 지금쯤 20~30대의 어른이 된 자녀가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또 자녀가 있다면 10대 미만의 초등학생 자녀가 있을 수 있는 나이이다. 물론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주로 10대부터 20대가 주 이용 계층이고, 최근에는 30~40대 이상의 중 장년 층도 게임을 많이 한다지만 하나의 게임을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세대를 뛰어 넘어 해 본 경우는 ‘스타크래프트’ 외에 찾아 보기 쉽지 않다. 실제로 주변에서 적어도 2대(아버지와 자녀)가 ‘스타크래프트’를 해 본 경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물론 지금은 예전에 비해 그 위세가 덜하긴 하지만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는 인기나 영향력 순위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다.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 까지 전국민으로 열광하고 지지 받는 게임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블리자드 개발자들도 몰랐을 듯 하다). 

필자가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접했을 때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필자와 친구들은 ‘디아블로’와 ‘C&C 레드얼럿’이나 ‘듀크 뉴켐 3D’에 빠져있었다. ‘듀크 뉴켐 3D’ 같은 경우는 LAN 케이블로 컴퓨터를 연결해서 친구들끼리 대전 게임을 했는데, 게임을 하는 도중에 그 열의가 지나친 나머지 현실세계에서도 종종 발차기와 주먹질이 오가곤 했다. 그렇게 또 한 1년을 어영부영 게임에 빠져 살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한 겨울 한파가 전국을 강타하던 그쯤에 난데없이 이상한 게임 하나가 툭 튀어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였다. 

그렇게 친구가 어디선가에서 들고 온 이상한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C&C 레드얼럿’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고, SF에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조합이 참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지고(C&C도 사실은…) 특히 미네랄 캐는 만만디 속도에 속이 터지게 답답해서 금방 그만두었다.

   
[Starcraft]
이미지: 유투브(/watch?v=jr2MDSdxcsA&t=3804s)

하지만, 친구의 집요한 설득과 협박에 못 이겨(자기 혼자 하면 재미없으니까 같이 하자고 그렇게 끈질기게 협박을 했다)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손에 잡았는데, 그것이 또 한 번 타임머신에 오르는 결과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간은 정말 10배속 옵션을 켜놓은 것처럼 자고 일어나고 스타하고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스타하고 자고 스타하고 밥 먹고 일어나고 스타하고 자고 하다 보니 어느덧 또 1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입대영장이 나온 줄도 모르고 게임에 빠져 살았다. 결국 정신차려 보니 ‘군대’라는 곳에 입대해 있었고 2년 2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속세와 담을 쌓고 살았다. 하지만 그 억압받고 폐쇄된 세상인 군대에까지 ‘스타크래프트’가 파고 들었다.

입대 동기 중에 ‘스타크래프트’를 꽤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래더 몇 위 어쩌고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친구가 밖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친구였던 모양이다. 부대원들이 땡볕에 작업하던 중에도 허구한날 중대장실에 불려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대장이 옆 중대장과 ‘스타크래프트’ 한 판 붙으려고 특훈을 받았다고 한다. 중대장보다 계급이 낮아 눈치만 보던 소대장들은 야간 취침 시간에 불러내서 그 친구에게 ‘스타크래프트’ 특훈을 받곤 했었다. 

그 당시에 중대장이라고 하면 중대 안에서 최고 높은 사람이었고 중대장 밑에 소대장들도 소위 정도는 무시할 수 있었지만 중위 정도 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장교였다. 그런데 그렇게 높아 보이던 양반들도 나중에 예비군에 가보니 소대장이라고 해 봤자 같은 20대 또래고, 소위를 거쳐 중위까지 군 생활을 하면 다시 사회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던 ROTC 장교들의 경우도 제대하면 일반인 신분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젊은이 중에 한 명이 될 뿐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하는 대화의 범주도 사실 병사와 장교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20대의 젊은이들이라면 ‘스타크래프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위기감이 군대에까지 영향을 끼친 결과, 예전 같으면 바둑 잘 두는 친구가 중대장실에 불려가던 일이 세상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점에서는 바둑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로 바뀌어 있었다.

   
[Starcraft]
이미지: 유투브(/watch?v=4nJAsejtBqU&t=5042s)

또한 그 시절 일부 부대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단순한 게임이라기보다는 전략/전술 훈련을 겸할 수 있는 교육용 디지털 교보재 정도로 인식하던 높은 양반들이 있어서 부대 안에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의 교체에 따라 군부대 역시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신세대 장병이니 밀레니엄 시대니 해서 군 부대 문화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 하나인 현재의 사지방(사이버 지식방)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대대급 인터넷 정보화 교육장’이 신설되면서, 필자 또한 조교로 차출되어 모자라는 PC 댓수를 채우기 위해 특별휴가를 받아 집에 있는 타워형 컴퓨터와 14인치 CRT 모니터를 들고 오기도 했다(물론 제대할 때 놓고 가라는 행보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 무거운 본체와 모니터를 다 들고 기차를 타고 집까지 가져갔다).

그 당시 대대급 정보화 교육장에서는 사회에 나가면 과연 필요할까 싶은 TIQ 인터넷 정보 검색사 1급, 2급 자격증을 장병과 장교들, 부사관들에게 교육했다. 합격률에 따라 조교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는데(합격률 70% 미만은 군기교육대), 교육을 제외한 시간에는 여가 시간에 자유롭게 PC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군대에서 ‘여가시간’과 ‘자유로움’, ‘기회’라는 말들은 병장에게만 허용 되는 단어이다).

그 때 간부나 조교 몰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병사들도 많았다. 그 때만 해도 인트라넷만 사용하지 않으면 국방부 홈페이지를 볼 필요도 없었고(공포의 국방부 홈페이지) 싱글 모드로 게임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세상과 단절되고 그 어느 조직보다 보수적이며 폐쇄적이고 닫힌 세계인 군 부대 안에서도 이 정도라면 바깥 세상은 말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필자는 제대하고 난 후에야 그 실상을 보고 놀라움에 입이 떡 벌어졌다.

   
[99 스타크래프트 세계챔피언]
이미지: 유투브(/watch?v=0SCsO2EfXk4)

벌써 2년이나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스타크래프트’는 인기가 소멸하기는커녕 이제는 전 국민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 되어 있었다. 기존의 게임들은 1년도 안 가 다른 게임으로 대체되면서 인기가 사라지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놈의 게임은 날이 갈수록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만 갔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게임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 하루 온 종일 길 거리 어딜 가나 ‘스타크래프트’와 관련 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정말 ‘스타크래프트’ 왕국 같았다. TV광고에도 신문 광고에도 라디오 방송에도 잡지나 길거리 전단지나 등 ‘스타크래프트’ 얘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관련 상품도 쏟아져 나왔고 캐릭터 상품은 물론이고 음료나 빵에도 ‘스타크래프트’ 관련 제품들이 나오기도 했었다.

필자가 군대에 입대한 무렵인 1999년도에는 ‘스타크래프트 세계챔피언’ 같은 말을 사용했는데 어느 순간 ‘프로게이머’ 라는 직업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제대하고 나왔을 때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은 온통 화제의 중심이었다. 어른들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의아해 하면서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사업적으로 잘 활용했고, 많은 아이들이 새로운 직업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저마다 제 2의 임요환을 꿈꾸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했다.

   
[Starcraft]
이미지: 유투브(/watch?v=jr2MDSdxcsA&t=3804s)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게임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은 ‘중독’, ‘현실 부적응’ 과도 같은 의미였다. 실제 그 당시 게임과 관련된 각종 방송들을 보면 공부 못하는 놈들이 한심하게 게임이나 한다고 혀를 차며 우리 아이 중독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현실과 게임을 구분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했다. 지금도 게임 자체를 좋게 바라보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출시된 20년 전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그리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이제 막 새로 생기던 그 때에는 아이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저 공부도 못하는 놈들이 게임을 하기 위한 핑계 정도로 생각해 나무라기 일쑤였다. 그렇게 자신들은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의 몰이해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와 비뚤어진 시각이 당시 게임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이었다(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이런 어른들의 불편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꿔주는데 일조한 게임이 ‘스타크래프트’다. ‘스타크래프트’를 기점으로 오락실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그 자리를 PC방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다수 어른들의 시각으로 ‘스타크래프트’ 이전에 오락실이라는 장소는 단순히 불량청소년들의 집합 장소일 뿐이었다. 온갖 폭력과 금전갈취 등의 청소년 일탈의 잠재적 범죄현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이런 곳에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이 있었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오락실에 가다 적발되면 체벌을 하기도 했다(필자도 어린 시절 오락실 가다 걸려서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오락실이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의 보급으로 PC카페, 인터넷 카페로 시작했던 컴퓨터 방들이 PC방 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퍼져 나갔다. 그 때도 PC방이라는 곳은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 컴컴한 지하에 퀴퀴한 담배 냄새와 사회 적응에 실패한 부적응자들과 노숙자들의 싸구려 쉼터 정도로만 생각한 어른들이 많았다(공부 아니면 다 불만이지?).

게임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시각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했더라도 조금이라도 다른 각도로 볼 수 여지를 마련하고 게임이라는 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낸 것이 ‘스타크래프트’였다. PC방이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고 PC방에는 여지없이 ‘스타크래프트’가 깔렸다. PC방과 ‘스타크래프트’의 조합은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어 냈고 그 인기로 프로게이머가 등장했다. 

초기에 프로게이머는 단순히 잠시 유행하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는데(부끄럽지만 필자도 그 중에 하나) 직업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속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로 기간의 지속성이나 수익 획득에 대한 기준 등 뭐 하나 체계적이고 정리된 것이 없다 보니 진정한 직업으로 인정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몇 년 안 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스타크래프트’ 대회는 그 뒤로도 10년 넘게 개최되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역시 사라지기는커녕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눈부신 활약을 하며 청소년들에게 선망 받는 인기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게임 하나가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한 나라의 운명까지 바꿔 놓았다. 대한민국에서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히 ‘게임’ 정도의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회와 변화를 알리는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Starcraft]
–스타하면 제일 많이 듣는 소리 Not enough minerals.. “ 그 놈의 미네랄 좀 원 없이 가져봤으면..”
이미지: 유투브(/watch?v=jr2MDSdxcsA&t=3804s)

전 세계를 기준으로 단순히 판매량으로만 따진다면 ‘스타크래프트’는 ‘디아블로’나 ‘워크래프트’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판매량은 아니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가 다른 게임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정확히 집계가 되지 않지만 이미 전 세계 1000만 판매량을 돌파했을 때 국내에서만 400만장 이상의 판매가 된 상황이다. 전 세계 판매의 절반 가까이가 대한민국에서 판매된 것이다. 물론 그 수치는 개인이 구입한 물량보다는 때마침 들판에 불길 번지듯이 자고 일어나면 동네에 하나씩 생겨나던 PC방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까지 겹치면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장기간 체류가 가능한 PC방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IMF 외환위기는 이미 1997년에 시작됐지만 그 여파는 꽤 오래 대한민국을 괴롭혔다. 4년간의 관리기간이 끝난 후에도 한 번 쓰러진 대한민국 경제는 다시 살려내기 힘들 정도로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했고 IMF의 관리기간은 종료됐지만 아직까지도 그 여파로 인해 청년 실업과 기업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것이 꼭 IMF 한가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긴축과 절약을 기본으로 IMF의 암울하고 힘겨운 시절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시기에도 높은 소득을 올리던 유일한 사업이 있었으니 바로 PC방 사업이었다.

   
[Starcraft]
이미지: 유투브(/watch?v=jr2MDSdxcsA&t=3804s)

국내 산업 거의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름 있는 기업들도 하나 둘씩 쓰러져 가던 그 때에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던 유일한 사업은 PC방 사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전국민적인 인기 이면에는 한 국가의 신음이 있었고 그 아픔을 달래주는 마취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지만 IMF 외환위기와 급속도로 확장되는 PC방의 진출 등으로 인해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더해갔고 결국에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E-Sports라는 용어와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다.

프로게이머와 비슷한 개념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게임 선진국에서도 이미 존재하긴 했지만 그것을 하나의 직업으로까지 인식시키며 완성시킨 것은 대한민국이라고 볼 수 있다. 게임을 하는 건 그냥 돈 낭비, 시간 낭비하는 무뢰배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질책하는 어른들뿐이던 세상에서 당당히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고 거기에 더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억 단위를 넘어서자 이를 보는 어른들의 시선도 당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역시 숫자가 나와야 반응하는 어른들). 최근에는 프로게이머보다 유투버 같은 또 다른 새로운 직종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될 정도로 다시 한 번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프로게이머는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선망 받는 직종이다. 

   
[Starcraft II]
“드디어 2가 나온다!”
이미지: 유투브(/watch?v=3pbHYxNmnVY)

그렇게 전 국민을 테란, 저그, 프로토스 3종족으로 분열시킨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시간이 흘러도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 닥쳤다. 그렇게 십수년이 지났어도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오랜 공백을 깨고 2007년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속편 개발이 발표되었을 때 관중석은 온 세상이 떠나갈 듯 관중석의 함성이 가득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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