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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게임별곡
[게임별곡] 닌텐도 동맹 붕괴, 소니 특공대에게는 기회닌텐도의 까다로운 검수 정책, 동맹 스퀘어 이탈 부르다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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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1  11: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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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특공대]
이미지 – 유투브(/watch?v=Y0kpYoGJE0k)

이제 모든 전권이 쿠다라기 켄의 손에 쥐어졌다. 오가 노리오 사장의 지원아래 쿠다라기 켄은 소니뮤직에 특별히 마련한 별도의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소니뮤직은 오가 노리오 사장의 텃밭이자 소니 내부에서도 핵심 계열사였다. 이것은 소니의 누구도 자신의 텃밭에 특별히 마련된 공간에 간섭하거나 잔소리 하지 말라는 오가 노리오 사장이 전하는 무언의 경고였다. 그렇게 쿠다라기 켄은 이제 특공대의 대장이 되어 소니의 막중한 특수임무를 부여받았다.

회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그것도 모자라 숙적 필립스와 손을 잡아 자신들을 우롱한 배신자 닌텐도를 처단하고,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였다. 구사일생의 위기 끝에 결국 프로젝트를 이끌 수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쿠다라기 켄에게는 어떻게 하면 경영진들에게 큰 소리 쳐놓은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제 아무리 날고 긴다는 쿠다라기 켄도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쿠다라기 켄 혼자 설계하고 납품한 슈퍼패미컴의 사운드 칩 정도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다.

다행히 쿠다라기 켄을 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의 핵심 기술 개발을 총괄 할 수 있는 개발자가 팀에 지원했다. 그가 바로 오카모토 신이치(岡本伸一)다. 오카모토 신이치는 일찍이 소니 사내그룹 게시판에 새로운 차세대 게임기 프로젝트(PS-X) 공고를 보고 최초 지원자로 등록했을 정도로 게임기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직접 쿠다라기 켄을 찾아가 면접까지 봤다가 자신의 상사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지원자는 달랑 3명에 불과했고 이들만 가지고 새로운 게임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오카모토 신이치(岡本伸一)]
https://www.corundum.bz/staff_trusted/%E5%B2%A1%E6%9C%AC%E4%BC%B8%E4%B8%80/

오카모토 신이치는 이후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오를 정도로 하드웨어 설계 부분의 기술개발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인재였다. 그 역시 다소 기이한 행실로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는데, 2003년 9월 1일부로 소니를 퇴사한 뒤에는 MS의 X-BOX 기술 관련 업무나 닌텐도의 3DS 칩셋을 공급하는 DMP의 이사로 재직하기도 했다(세상에 영원한 적은 없나 보다).

기술 관련 엔지니어로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오카모토 신이치였지만 삼국지로 치면 관우나 장비와 같은 무장(무인)에 가까웠고 전쟁은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참모)가 필요했다. 여기에 새롭게 합류한 지원군이 ‘마루야마 시게오(丸山 茂雄)’이다. 마루야마 시게오는 쿠다라기 켄과 마찬가지로 소니 내부에서 이단아 취급받던 위인이다(그래도 미친놈 소리까지는 안 들었다).

미루야마 시게오는 탁월한 안목과 뛰어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소니뮤직의 사장 자리까지 오른 유능한 인재였는데, 소니뮤직을 설립한 오가 노리오의 측근 인사였다. 오가 노리오 사장은 쿠다라기 켄에게 특별 사무실을 마련해준데 이어 든든한 지원군까지 보내준 것이다. 지원군으로 합류한 마루야마 시게오 역시 평소에 게임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는데 닌텐도의 패미컴 게임을 해보고 게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소니 내부에서 쿠다라기 켄의 차세대 게임기 사업에 공감을 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CBS SONY - 왼쪽에서 4번째가 오가 노리오]
이미지 – https://www.sony.net/SonyInfo/CorporateInfo/History/SonyHistory/2-22.html

마루야마 시게오는 오가 노리오 사장과는 이미 CBS SONY 시절부터 함께 했다. 1966년 와세다 대학의 상학부를 졸업하고 CBS SONY 설립 초기에 입사해 영업부과 광고부를 거치면서 이후 EPIC SONY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이 때 일본의 유명 작사가, 작곡가이자 음악 제작자이며 댄스 음악을 일본에 대중적으로 널리 퍼트리게 한 코무로 테츠야(필자도 좋아하는 globe!)를 배출할만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능한 인물이었다. 결국 소니뮤직의 사장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인 마루아먀 시게오가 쿠다라기 켄의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에 합류했다는 소식에 소니 내부는 술렁였다. 미친놈이 이제 힘까지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쿠다라기 켄은 무력이 뛰어난 장수(오카모토 신이치)와 출중한 지력의 참모(마루야마 시게오)를 얻었다.

   
[마루야마 시게오]
이미지 – https://nintendowire.com/news/2016/11/13/former-sony-chairman-discusses-cancelled-snes-playstation-add/

오가 노리오의 핵심 측근인 마루야마 시게오가 합류했다는 소식에 그 동안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에 관심은 있었어도 경영진들의 눈총이 두려워 팀에 합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최고 책임자인 오가 노리오 사장과 그의 핵심 측근인 마루야마 시게오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이 팀에 방해하거나 간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오가 노리오 사장은 한 명을 더했다. 오가 노리오 사장이 컬럼비아 영화사(현 소니 픽처스)를 인수 할 때 법무와 전략 기획팀에서 활약했던 ‘토쿠나가 테루히사(徳中 暉久)’이다. 후에 소니 재무이사(CFO)에 오르는 입지적인 인물로 CFO는 회사의 자금부분 전체를 담당하는 총괄책임자로 보통 대규모의 회사에서는 CEO(최고경영자), COO(최고 업무책임자)와 함께 3대 중요 경영 업무 책임자로 분류되는 자리다.

   
[토쿠나가 테루히사(徳中 暉久)]
이미지 – https://pc.watch.impress.co.jp/docs/2002/0725/sony.htm

토쿠나가 테루히사는 1969년 게이오 대학의 법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소니에 입사하였는데 1999년에 소니의 전무이사가 되었고 2000년에 소니의 대표이사 부사장 겸 CFO의 자리에 올랐다. 그 이후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 주식회사의 대표 이사 사장과 소니 손해보험 주식회사의 이사를 거쳐 소니 파이낸셜 홀딩의 회장에 까지 오른 인물로 그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이렇게 쿠다라기 켄의 주도에 의해 기술자인 오카모토 신이치와 참모 역할에 마루야마 시게오, 그리고 경영지원에 토쿠나가 테루히사까지 모였다. 어느새 PS-X 프로젝트는 소니 그룹 내부에서 이단아 취급 받고 미친놈 소리를 듣던 이상한 놈(쿠다라기 켄) 혼자 여기저기 날뛰면서 게임기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생떼를 쓰는 하찮은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회사의 주요 핵심인물들이 속속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소니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전쟁을 목전에 두고 출전 장수들까지 배치했으니 이제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남았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은 닌텐도 아니면 세가가 다 해먹고 있는 실정이었다. 가정용 콘솔 게임기의 게임을 개발하는 업체 대부분은 이미 닌텐도 아니면 세가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신흥세력인 소니에 가담하려는 업체는 전혀 없었다. 멀티플랫폼이 당연시되는 요즘에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으로 게임을 출시하고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용으로 같이 출시하는 일은 어지간히 규모 있는 큰 회사가 아닌 이상 한 쪽 진영에 대한 이적 행위로 간주되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편에 붙을래?]
이미지 - 유투브(/watch?v=OXGwGSBVloE)

그래서 게이머들은 기대하는 명작 게임이 어느 플랫폼으로 출시되는지 여부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다. 예를 들어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는 슈퍼패미컴 시절 단 한번도 세가의 게임기로 출시 된 적이 없었다. 물론 양쪽 플랫폼으로 게임을 출시하는 업체들도 종종 있었지만 이미 게임 업계를 선점하고 있는 두 회사(닌텐도, 세가)를 두고 중소 게임 개발사들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전업체 따위가 만드는 새로운 게임기에 발을 담그겠다는 업체는 정신 나간 사장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닌텐도의 지나친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닌텐도는 자사의 콘솔 게임기로 게임을 출시 할 경우 서드파티에게 요구하는 검수 기준이 꽤나 까다로웠다. 출시량에 따른 카트리지 롬(롬팩)마다 지불하는 라이선스가 꽤나 부담스러운 것도 문제였다. 쿠다라기 켄은 진작에 이 점을 간파하고 닌텐도에게 차세대 게임기는 무조건 CD-ROM과 같은 대용량의 저가 생산이 가능한 매체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결국 닌텐도의 카트리지에 대한 고집으로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어 서로 결별하게 됐지만, 어차피 닌텐도와 틀어진 거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쿠다라기 켄이 제시한 CD-ROM 출시 제안은 많은 서드파티들에게 혹하는 조건이었다. 일단 카트리지 방식에 비해 제조단가 자체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다. 카트리지 방식의 경우 플라스틱의 외장체와 라벨 인쇄비용부터 내부에 기판과 롬(반도체)까지 전부 다 비용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CD-ROM은 단지 복사만 하면 됐다. 예약발매라던가 선주문 등의 판매수요 예측과 같은 어렵고 복잡한 일도 필요 없었다. 혹시라도 판매량이 대박이 날 경우 그 즉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유연한 재고관리도 큰 이점이었다. 어느 부분을 비교해도 카트리지 방식보다는 CD-ROM방식이 우세했고 여기에 더해 쿠다라기 켄은 로열티도 대폭 낮게 책정했다.

   
[젊은 시절의 쿠다라키 켄]
이미지 - https://iluminasi.com/bm/ken-kutaragi-kisah-father-of-playstation.html

융통성 있고 유연한 플랫폼 출시 규정과 낮게 책정된 로열티 비용 그리고 대량 생산에도 제조 단가에 부담이 없는 비용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은 반응했다. 많은 게임개발업체들이 술렁거렸고, 어느 새 닌텐도에 대한 불만과 반감으로 억눌러 왔던 분노가 한 번에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에 닌텐도와 계약해서 게임을 출시했던 업체들은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재정상황에 닌텐도에 꼬박꼬박 마스크 롬 비용과 생산/제조 위탁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했다.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의 경우 롬 카트리지 안에 게임이 저장되는 방식에 대한 기술을 닌텐도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드파티라 불리는 게임개발 업체들은 게임을 출시할 때 마다 롬 카트리지 한 개 당 마스크 롬(Mask ROM) 15%의 비용과 생산 위탁 로열티에 15%, 소프트웨어 개발비 10%, 소프트웨어 메이커 마진 10%, 광고비 집행에 6%, 리스크 회피 요금 6%, 도매상 마진에 13%, 소매상 마진에 25%를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리스크 회피 요금은 닌텐도가 기껏 팩을 만들어 줬는데 게임개발업체들의 게임이 잘 팔리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일종의 보험과 같이 닌텐도에 지불하는 금액이었다(닌텐도는 게임개발업체가 망해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

그러나 정작 대박이 나더라도 앉아서 돈 버는 건 닌텐도였고, 게임개발 업체에 돌아가는 몫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었지만 플랫폼을 독점하고 있었던 닌텐도에게 감히 대든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있던 쿠다라기 켄은 즉시 그에 반하는 조건을 게임개발업체들에게 제안하게 되었고 여기서 많은 업체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극단적으로까지 생각하면 소니 내부에서도 ‘미친놈’이라 소문난 저 미친놈의 말을 믿고 회사의 운명을 걸어도 될 것인가?로 시작 된 이 고민은 많은 게임 개발사 사장들의 머리에 쥐가 나게 했다.

자신들의 플랫폼 생존 유지를 서드파티의 희생과 고통으로 배를 채우는 닌텐도의 비용정책 구조에 넌덜머리가 난 중소 게임개발업체 사장들이 주저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쿠다라기 켄은 한 방 더 큰 걸 때린다.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에서 출시할 게임들은 향후 ‘마스크 롬 비용’과 ‘생산 위탁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었다. 이 말에 결국 이 미친놈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는 사장들이 늘어갔다. 어차피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하는 심정으로 이탈하는 업체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기술에 거는 희망과 기존의 탐욕적인 제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을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생존에 달린 문제를 두고 아직도 주저하는 업체들이 많았고 이 때 결정적으로 핵폭탄 급의 위력으로 닌텐도 진영의 이탈을 결정짓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닌텐도와 오랜 우방으로 “닌텐도 = 파이날판타지”라는 공식으로도 유명했던 스퀘어의 이탈이었다. 스퀘어는 ‘파이날판타지’ 시리즈를 개발하여 일본 내에서 국민RPG라는 칭호를 수여 받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필자도 파이날판타지 때문에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을 구매했을 정도로 당시에 파이날판타지나 드래곤퀘스트 같은 게임을 하려면 닌텐도의 슈퍼패미컴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시리즈 1편부터 6편까지 영원할 것 같았던 닌텐도와 스퀘어의 협력관계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스퀘어 역시 닌텐도에 적지 않은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닌텐도의 까다로운 품질 검수 정책이 원인이었다. 플랫폼을 독점하고 있던 닌텐도는 품질검수의 영역에서 콘텐츠 관리에까지 손을 뻗게 되는 실책을 하게 됐고, 이것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간섭하는 최악의 관리체제로 변질됐다.

   
[Final Fantasy V]
이미지 - 유투브(/watch?v=Z0RtcAi94bQ)

예를 들면 파이날판타지 게임에 등장하는 특정 장소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검수를 통과하지 못했다. 심사에 제출한 게임의 내용으로는 북미시장에 판매에 어려움이 있으니 내용을 수정하라고 지시한다던가 하는 등의 간섭이 이어졌고 이것은 개발자들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한 이유가 되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퀘어도 닌텐도 진영의 이탈을 선포하게 되었고 소니와 협약하기로 발표한 순간 닌텐도는 지구에 거대한 운석충돌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더러워도 참고 있던 중소 게임개발사들의 이탈이 가속화 되었던 것이다.

닌텐도의 까다로운 품질 검수는 닌텐도 내부에 ‘슈퍼마리오클럽’이라는 팀이 담당했는데 게임출시 이전에 QA/QC를 담당하는 팀이었다. 슈퍼마리오클럽 팀은 닌텐도에서 자체 규정한 조건들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일정한 점수에 도달해야만 승인판정을 받아 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초기의 의도와 다르게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에 의도했던 것은 닌텐도의 패미컴 출시 이전에 아타리(ATARI)가 조악한 품질의 게임들 때문에 멸망한 과정을 지켜본 닌텐도가 최소한의 품질이 유지되지 않으면 시장은 멸망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최소한의 품질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시행한 제도였지만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사업적으로 변질이 되어 가면서 품질 검수과정은 플랫폼 독점기업의 갑질이 되어갔다. 게다가 검수 기준의 모호한 부분에 업체마다 형평성도 문제가 되었는데 비교적 규모가 큰 게임개발사와 중소 업체들간의 차별이 심했던 것도 닌텐도의 반감으로 이탈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당시 닌텐도의 품질검수 기준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성적인 암시가 포함되어 있거나 노출이 포함된 노골적인 콘텐츠가 있는가?
2. 특정 성별을 폄하하는 단어나 서술이 묘사되었는가?
3. 불필요하게 과도한 폭력이 묘사된 부분이 있는가?
4. 죽음에 대한 그래픽 일러스트가 묘사되었는가?
5. 가정폭력이나 학대가 묘사되었는가?
6. 실제 스포츠 게임이 포함하고 있는 것 보다 더 과장된 힘을 묘사하고 있는가?
7. 인종, 종교, 국수주의, 성적인 고정관념을 포함하고 있는 언어를 나타내고 있는가? (예: 십자가, 교회, 다윗의 별, 사탄, 지옥, 부처 등)
8. 공공의 기준과 테스터들이 생각했을 때 불쾌하다고 여겨지는 신성모독이나 외설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는 언어 혹은 제스처를 사용하고 있는가?
9. 불법적인 약이나 술을 음용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행동이 포함되어 있는가?
10. 은연중에 정치적인 메시지나 문구를 포함하고 있는가?

스퀘어의 파이날 판타지2의 경우에도 7번 항목에 따라 지나치게 자주 교회 장면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품질 검수를 통과하지 못해서 수정해야 했다. 스포츠 게임들의 경우 9번 항목에 따라 경기장에 등장하는 광고판에 술이나 담배 회사들의 광고의 묘사가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품질관리에 따른 자체 검열기준이야 어느 플랫폼 업체나 다 마찬가지지만, 닌텐도는 문제점을 파악하기는 했어도 그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는 실수를 했다. 애초에 아타리가 멸망했던 이유는 제대로 실행조차 버거운 버그 투성이의 게임이나 수준 미달의 저질 게임들이 범람하면서 구매자들의 원성과 불만의 폭발로 전체적인 게임 시장이 몰락한 것이었다. 이를 지켜본 닌텐도가 북미에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면서 아타리의 실패를 교훈삼아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놓은 해결책이 자체 검열기준을 설정하고 관리하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열기준 항목 자체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하는 식의 모호한 점으로 간섭과 규제가 심해지는 이른바 갑질의 기준으로 작용했다는점이 많은 중소 게임개발업체들의 불만을 사게 됐다.

   
[왼쪽부터 쿠다라기 켄 / 토쿠나가 테루히사]
이미지 – http://ascii.jp/ascii24-img/2003/10/28/imageview/images727437.jpg.html

쿠다라기 켄은 바로 이런 닌텐도 진영의 아킬레스 건을 눈 여겨 보았다. 그리고 다시 PS-X의 핵심인물들이 모였다. 소니의 오가 노리오 사장과 쿠다라기 켄을 주축으로 최고 기술자인 오카모토 신이치와 참모 마루야마 시게오, 그리고 경영지원 토쿠나가 테루히사의 소니측 팀과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닌텐도 진영의 우에무라 마사유키와 사장의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 그리고 닌텐도와 소니의 세력전에 사이에서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세가(SEGA)의 진영이 정보전을 펼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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