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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게임별곡
[게임별곡] 플스2에 또 참패한 세가, 결국 항복선언기자회견 열고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서 영구 철수 발표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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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1  13: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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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21일 동경의 한 호텔에서 세가는 ‘SEGA New Challenge Conference’를 개최했다. 그 곳에서 세가의 야심 찬 차세대 콘솔 게임기 ‘드림캐스트(DC)’가 공개됐다. 히타치의 차세대 CPU SH4와 NEC의 Power VR2 그래픽 칩셋에 Microsoft Windows CE 탑재, 그리고 야마하의 XG 사운드 칩셋과 기본 36K 모뎀 내장까지. 드림캐스트는 ‘괴물 머신’이라는 수식어로 게이머들은 물론 각종 언론매체에까지 관심의 대상이 됐다.

   
[SEGA New Challenge Conference]
이미지 – 유투브(/watch?v=9ngKU9VYNZQ)

발표 회장에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이리마지리 쇼이치로’ 사장이 발표를 했다. 이 때만 해도 자신 있고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세가는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이전 세가 새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말로만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회사의 사활을 걸고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었다.

세가의 모든 자금은 드림캐스트 프로젝트로 집중됐다. 당시 드림캐스트 하드웨어 개발에만 약 80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그리고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2억 달러, 마케팅에는 3억 달러가 지출됐다. 지금으로 따져도 엄청난 거액인 거의 6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이 투자됐고 천하의 세가도 이 정도 비용은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엄청난 거액의 개발비용이었다. 세가의 이런 노력으로 출시 전부터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하드웨어 자체의 성능이 기존 게임기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성능을 중요시하는 게이머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다. 사전 예약대수도 8만대를 넘기는 등 초반 성적은 아주 긍정적인 수치였다. 게다가 1999년에는 기네스북에서 최고의 성능을 가진 게임기로 등록되는 등 이 때만 해도 모든 상황이 좋아 보였다. 이런 기세를 타고 ‘드림캐스트’는 ‘성능’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드림캐스트 사양]
표 – https://namu.wiki/w/%EB%93%9C%EB%A6%BC%EC%BA%90%EC%8A%A4%ED%8A%B8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세가 입장에서는 소니와 플레이스테이션 vs 세가 새턴의 1차 전쟁에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의 3D성능에 발목을 잡혀 대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가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하드웨어의 고차원적인 성능을 앞세워 자신만만하게 차세대 꿈의 기종 ‘드림캐스트’를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뒤 동맹군 NEC에서 긴급한 소식을 전해왔다. 드림캐스트에 탑재할 NEC의 PowerVR2 그래픽 칩셋의 공정상 불량률이 너무 높아서 도저히 드림캐스트 출시에 맞춘 물량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몇 천 억 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 부어 간신히 세간의 이목을 집중 시켜 놓았는데 하필이면 이 때 발매 연기라니.

동맹군의 어처구니 없는 업무진행 과실로 11월 20일로 예정된 발매일을 연기하고 1998년 11월 27일에서야 간신히 발매를 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렀다. 그렇게 온 우주의 힘을 모아 자신들의 염원을 담은 세가의 ‘드림캐스트’가 세상에 나왔지만, NEC에서는 여전히 공급 물량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출시일 지연과 중요부품 납품 일정 차질과 같은 문제로 드림캐스트 발매 초기 TV CF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유카와 히데카즈’ 전무는 상무로 좌천됐다. 세가는 공식 사과문까지 발표해야 했다. 

어수선한 세가의 행보를 잠잠히 지켜보고 있던 소니는 곧바로 대응을 시작했다. 1999년 3월 소니의 차세대 기종을 발표한 것이다. 소니의 차세대 기종은 이전 플랫폼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서 플레이스테이션2(PS2)라고 명명 됐다. 세가가 새턴의 이름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플랫폼으로 승부수를 걸었던 것에 비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라는 이름에는 이미 성공한 자의 여유가 엿보였다. 성공한 전작의 이름을 계승하여 이전의 성공적인 시장 진출에 대한 자신감과, 앞으로도 지속적인 공세를 취하겠다는 의미였다. 플레이스테이션2가 공개되자 드림캐스트를 능가하는 성능과 스퀘어와 에닉스 등 주요 타이틀 업체의 게임 소프트를 무기로 실제 시장에 발매되기도 전에 이미 드림캐스트 진영은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소니보다 먼저 시장에 진출해 있던 세가는 시장 선점의 효과를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런 믿음조차 가질 수 없다면 너무나 암울해지는 상황이었다. 세계 최초로 모뎀을 기본 탑재하고 모델3의 3배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높은 성능, 그에 비해 낮게 책정된 가격과 써드파티들을 위한 편리하고 손쉬운 개발 환경을 지원, NAOMI와 비주얼 메모리 그리고 NEOZIO 포켓과의 상호 연동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펼쳐 있는 이름 그대로 꿈 같은 ‘드림캐스트’였다. 

이런데도 망한다고? 그렇게 망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일단 동맹군 관리가 허술했다. 동맹군은 중심의 주축군이 흥하던 망하던 사실 크게 상관이 없다. 자신들의 세력보존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NEC가 자체 게임기 사업을 추진했다면 그래픽 칩셋의 불량으로 공급물량을 맞추지 못하는 일 따위는 발생할 수도 없거니와, 발생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발생했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겠지만, NEC에게 그런 정도의 각오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드림캐스트의 발매 초기부터 생산 중단까지 NEC가 책임지고 담당하겠다며 자신만만해 했던 PowerVR2 칩셋은 한 번도 공급 물량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을 정도로 드림캐스트의 발 빠른 시장 진입에 장애가 되고 있었다. 

또 다른 동맹군이었던 야마하와 함께 개발한 GD-ROM 역시 드림캐스트의 발목을 잡았다. 불법복제 방지 기능을 특장점으로 내세우며 자신하던 GD-ROM도 MIL-CD의 등장으로 불법복제의 길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범용 표준 저장 매체가 아니다 보니 주문생산 방식으로 제조 단가 역시 낮출 길이 없었다. 2000년 한 해에만 세가의 손실은 500억엔(약 5000억원)을 넘어섰다. 세가의 다른 사업부가 벌어들인 돈을 게임기 사업부가 다 말아먹고 있었다. 오카와 회장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가면서 까지 세가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1000억엔(약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내고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SEGA Ends The Dreamcast (January 31, 2001)
유투브(/watch?v=ulvqRGdnOXo)

그리고 결국 2001년 1월 31일. 역사적인 세가의 항복 선언이 있었다. 세가의 오카와 이사오 회장과 임원진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며 영구히 철수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때의 충격과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세가의 오카와 이사오 회장은 2001년 3월 16일 암과 합병증(심장마비)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세가는 파산 절차만 남은 단계였다. 하지만, 오카와 회장이 세가에 대출해주었던 금액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의 재산 850억엔(약 8500억원)을 세가에 기증하면서 가까스로 파산만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오카와 이사오 회장은 세가의 모기업인 CSK의 회장으로 오래 전 세가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로젠(세가의 창업자: 마틴 브롬, 어빙 브롬버그, 제임스 험파트, 데이비드 로젠)의 권유로 세가에 투자 하면서 세가와 연을 맺었다. 오카와 이사오를 세가에 끌어들인 데이비드 로젠은 미 공군 장교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모두 참전한 역전의 용사였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젠 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를 운영했다. 1965년 세가의 전신인 서비스 게임즈와 로젠 엔터프라이즈가 합병하면서 두 회사의 이름이 합쳐져 ‘세가 엔터프라이즈’가 되었다. 데이비드 로젠은 그 뒤로 세가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세가의 모든 사업을 도맡아 했다. 1983년 7월 15일 세가가 가정용 콘솔 게임기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도 데이비드 로젠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닌텐도의 패미컴과 맞붙은 세가의 SG-1000이 대패하는 참사를 겪고 재정적인 위기상황에서 당시 세가의 모회사였던 ‘걸프 앤 웨스턴’이 데이비드 로젠에게 3800만 달러에 세가를 인수하라는 제안을 하면서 부족한 인수 자금을 CSK홀딩스의 투자금으로 해결했다.

CSK는 1968년 오카와 이사오 회장이 창업한 회사로 1980년에는 도쿄주식시장에 상장했다. 그 이후 각종 인수합병을 거쳐 30여 개가 넘는 자회사를 거느린 일본의 정보기술 관련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84년 세가(SEGA)에 자본을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됐고, 2003년 12월 파친코 업체인 사미에게 지분을 매각하기 전까지 세가의 최대 주주 자리를 지켰다. 오카와에게 있어 세가는 자식과도 같은 회사였고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시름시름 병을 앓고 백약이 무효한 상황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결국 그것이 병으로 나타나 그의 생명을 갉아 먹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세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오카와 이사오 회장은 결국 세가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사업 철수 발표 얼마 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세가는 회장의 사망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과 사업부 정리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혹독하게 재정규모를 정비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쯤, 2003년 파칭코 업체인 사미와 합병하여 세가-사미 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드림캐스트는 드림캐스트 자체만 놓고 보면 아주 훌륭한 게임기였다. 하드웨어의 성능적인 부분이나 이전 콘솔게임기들에 비해 편리하고 쉬워진 개발환경, 그리고 성능에 비해 낮은 가격과 무한한 확장성까지 겸비한 정말 꿈의 기종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진짜 꿈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제일 처음 발매됐을 당시 일본 내 출하량은 약 240만대였고 해외 출하량은 약 820만대로 전 세계 누적 출하량이 약 1060만대였다.

처음으로 1000만대를 넘기기는 순간 드림캐스트는 정말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린 꿈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약 1년 4개월 뒤에 출시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악랄하고 무자비하게도 이 꿈을 짓밟아 놓았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2000년 3월 4일에 출시한 뒤로 전 세계적으로 1억 5400만대가 넘게 판매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정용 콘솔 게임기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놓고 봤을 때 1000만대와 1억 5400만대의 판매 수치. 그 이상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이번에도 소니의 승리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승리였다.

소니와 세가의 1차 전쟁 당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박살 난 세가는 세가 새턴의 패배의 책임을 물어 수장이었던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시켰다. 소니와 세가의 2차 전쟁 역시 또 다시 소니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세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이번에도 이리마지리 쇼이치로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시켰다. 외견상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영전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세가의 부회장은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자리다. 즉, 실패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이다. 닌텐도와 싸워 온 것도 벅찬데 난데없이 등장한 소니와 싸우느라 세가는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아니 사실은 기울고 말고 할 가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세가의 사장들도 차례로 잘려 나가고 있었고, 회장은 거의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했다. 세가에 붙었던 믿음직한 동맹군들도 제 각기 자기 살길 찾아 떠나 버렸고 이제 남은 건 상처만 남은 이름뿐이었다. 어디 가도 내세우기 부끄러운 그 이름 그마저도 잃을 뻔 하다가 가까스로 세가-사미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 사양]
표 – https://namu.wiki

자신들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온 세상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차이점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아니라 뒤에 숫자가 바뀐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차이점뿐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세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렇게도 자신들의 염원을 담고 또 담았지만 어찌하여 소니는 자신들의 앞 길을 가로막고 저렇게도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 소니의 쿠타라기 켄은 이제 세가의 원수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세가에서 볼 때 분명 하드웨어적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성능 수치 비교상 먼저 출시한 세가의 드림캐스트와 후에 출시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다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가 아무래도 나중에 출시됐기 때문에 약간 우월한 입장에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세가에서는 이번에야 말로 충분히 겨뤄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우월주위에 빠진 자들의 오만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 거기에 쿠타라기 켄의 사기에 가까운 홍보도 한 몫 했다. 아직 출시도 안 되어 실체도 없는 게임기에 과장 된 성능 수치나 상대 진영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드는 고단수의 농간에 세가는 말려들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비트 싸움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32비트를 넘어가면서 64비트 128비트와 같은 단순한 숫자 싸움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기 힘들었다. 성능이 최우선이었던 과거와 달리 성능은 당연한 기본 옵션이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세가는 이 부분을 놓쳤다. 단지 성능 수치에만 신경 쓰다 보니 그 성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부족했던 것이다.

   
[Dreamcast GD-ROM]
이미지 – 유투브(/watch?v=5-UXfo-GgSI)

세가의 가장 큰 실책 중에 하나는 시대의 빠른 기술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닌텐도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바로 저장매체다. 닌텐도가 차기 저장매체로 CD-ROM이 아닌 카트리지 방식의 롬 팩을 고집했듯,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12배속의 GD-ROM을 표준 저장 장치로 채택했다. GD-ROM은 많은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1.2GB 밖에 안 되는 저장 용량이었다.

세가 연합군의 주력 중 하나였던 야마하와 공동 개발한 GD-ROM은 기존에 사용하던 CD-ROM의 생산 라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제조공정에 필요한 제작비가 적게 든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엄청난 장점이 저렴한 비용이었다면 반대로 엄청난 단점은 1.2GB 밖에 안 되는 저장용량이었다. 기껏 CD-ROM의 2배정도의 용량인데 사실 2CD 게임이나 4CD 게임이나 CD 한 두 장 더 늘어나는 정도이기에 멀티미디어 시대에 적합한 수치로는 다소 부족한 편이었다.

게다가 GD-ROM은 1.2GB의 용량이라고 해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은 984MB밖에 되지 않았다. GD-ROM의 스펙 자체가 기존의 CD-ROM 생산 공정을 활용하려다 보니 GD-ROM 디스크 하나에는 2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 게임 데이타가 저장되는 곳은 두 번째 세션인 고밀도 세션으로 이 영역은 984MB로 지정되어 있었다. 게임 데이타로 쓸 수 있는 용량만 따지면 CD-ROM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Playstation 2]
이미지 – 유투브(/watch?v=xKv8BfgpUwA)

그에 비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는 DVD-ROM을 기본 저장 장치로 채택했다. DVD는 4.7GB의 용량으로 1996년 CD의 후속으로 등장했다. DVD의 개발과정에는 두 진영이 혈투를 벌였는데 한 쪽 진영은 소니와 필립스 연합군이고 다른 한 쪽은 JVC와 도시바, 히타치, 마츠시타 등과 같은 일본 내 굵직한 가전/전자제품 업체들의 연합이었다.

진영표를 잘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니와 필립스는 플레이스테이션 1 때만 해도 서로 불편한 관계였지만 DVD 표준 전쟁 때 다시 손을 잡았다. 그 이유는 다른 한 쪽 진영이 JVC와 도시바, 히타치, 마츠시타 등과 같은 세가(SEGA)와 손 잡은 드림캐스트 연합군이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소니와 필립스는 플레이스테이션 1(PS-X) 때만 해도 닌텐도와 얽힌 문제로 서로 불편한 관계였고, 그 와중에 닌텐도와 함께 만들기로 했던 플레이스테이션이 무산되는 바람에 서먹해졌다. 하지만 강력한 상대를 앞에 두고 오월동주(吳越同舟)하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세가 연합군 중에 소니와 한 판 안 붙은 회사가 없었을 정도로 세가의 드림캐스트 연합군은 ‘반 소니 동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드림캐스트 연합군 중에 하나였던 마츠시타와 JVC는 이미 1970년대에 소니와 한 판 크게 붙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비디오 규격 전쟁’이라고 까지 불리는 소니와 JVC 사이에서 벌어진 비디오 표준 규격 경쟁에서 마츠시타가 소니의 ‘베타맥스’가 아닌 JVC의 ‘VHS’편을 들어주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디오 표준은 VHS가 됐다. 이 때부터 소니와 마츠시타는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 번 제대로 붙게 된 것이다. 마츠시타 뿐만 아니라 히타치나 도시바 역시 이전에 칼라 TV 전쟁에서 소니와 한 판 붙은 적이 있었고, 자신들이 선점하고 있던 TV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였던 소니의 트리니트론 컬러 TV가 승승장구 하며 시장을 빼앗긴 아픈 기억이 있었다.

이렇게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는 소니와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를 두고 벌이는 비즈니스 경쟁 같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 전자/전기 업체들의 물리고 물리는 경쟁관계에 힘겨루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굴지의 대기업 집단인 JVC, 도시바, 히타치, 마츠시타는 산업 및 가전 제품의 수 많은 표준과 특허를 지정하고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주류들이었다. 그들의 자신감의 근원은 바로 기술력에 있었고 언제나 그들이 만들면 표준이 되었고 시장은 그들을 따라와주었다. 그런 오만함이 상대의 힘을 무시하고 경계를 게을리하게 했다. 그것이 결국 절대 패할 수 없는 강력하고 거대한 연합군을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패착의 원인이 됐다.

이제는 기술이 선도하고 시장이 따르는 시대가 아니었다. 더 이상 소비자는 기술을 선봉하고 따라와 주는 존재가 아니었고, 이제는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취향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대기업 집단들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던 것도 이 때 즈음부터다.

세가의 실책 중에 또 하나는 하위호환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세가는 새턴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차세대 기종인 드림캐스트에서 새턴의 타이틀을 구동 시킬 이유가 없었다. 이름부터 다른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굳이 호환성을 지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니는 영리하게도 이 점을 노렸다.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1을 구매할 사람은 거의 다 구매했지만 애매하게 구매 시기를 놓쳐 아직도 구매를 고민하는 예비 구매자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차세대 기종인 드림캐스트를 사야 할지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야 할지 고민 하는 수요층이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 1 게임은 아직도 계속 출시되고 있었다. 이제 막 새로운 차세대 기종들이 나오는 시점에서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 출시된다고 해도 구닥다리 예전 게임기를 사는 것은 바보짓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니는 답을 내놓았다.

“플스2를 사십시오. 플스1 게임도 가능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하위호환성을 지원하기 때문에 100%는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이 구동 가능했다. 아직 게임기를 구매하지 않은 예비 고객들에게 이 점은 굉장히 큰 구매 결정 이유가 됐다. 이미 세상에 출시 되어 있는 수 천 종류의 게임이 바로 가능하다. 드림캐스트는 아직 출시 된 게임의 수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플레이스테이션2 역시 마찬가지로 문제였다. 플레이스테이션2 역시 발매 초기에는 전용 타이틀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플레이스테이션2는 이전에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들을 구동 할 수 있었기에 전체 구동 가능한 타이틀의 개수만 따져보면 플레이스테이션2가 압승이었다. 플랫폼 출시 이후 초반 게임 타이틀 부족은 플랫폼에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이 치명적인 위험구간을 전혀 예상치도 않은 부분에서 해결하게 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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