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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게임별곡
[게임별곡] 염료가공업에서 출발한 코에이, 취미가 본업으로취미로 만든 역사게임 인기 얻으며 게임제작으로 업종 변경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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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6  1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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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I]
이미지 - http://www.koei.co.jp/

KOEI라는 회사는 일본어로는 ‘光栄’이라고 표기하는데 우리말로는 ‘광영, 영광’이라는 뜻이다. 다른 해석으로 ‘REKOEITION’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Re + KOEI + Tion’이라고 해서 KOEI라는 회사에서 재해석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역사라는 뜻이라고 한다.

1978년 창업하여 ‘코에이 마이컴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KOEI는 1990년대 우리나라에 ‘삼국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회사이다. 삼국지하면 여러 게임들이 있지만 그 중에 KOEI의 삼국지 게임을 능가하는 게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삼국지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회사라고 할 수 있다.

1978년 7월 25일 창업한 KOEI는 처음에 한 부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회사였다. 에리카와 요이치와 에리카와 케이코(일본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딴다). 에리카와 부부가 설립한 이 회사는 처음부터 게임개발 회사가 아니었다. 초기에 KOEI는 천, 원단에 색을 입혀 가공제품을 납품하는 염료회사였다. 에리카와 집안은 대를 이어 염료 가공업을 하던 집안이었는데 에리카와 요이치는 3대에 이어 가업을 이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집안의 어른들만의 생각이었고 정작 에리카와 요이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가업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니면 가업을 이을 사람이 없었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업을 잇게 되었는데 저가 공세로 밀려오는 동남아의 섬유 산업 진출로 인해 일본의 섬유산업은 불황을 겪게 되어 결국 폐업을 하게 되면서 가업이 끊기게 되었다.

   
[KOEI 삼국지(1988)]
유투브(watch?v=aUFsMMbScW8&list=PL1WHG-av-aJ97qVvJGIIX1Ff3Q-eR7aK9)

뭔가 분통했던 에리카와 요이치(襟川 陽一)는 1978년 27세 되던 해에 자신이 직접 ‘光栄(KOEI)’라는 회사를 세우고 현재까지도 회사를 이끌고 있다. KOEI라는 회사의 이름처럼 집안의 옛 영광을 되찾고자 분투했지만 결국 사업은 점차 적자가 계속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쳐가던 어느 날 에리카와 요이치가 컴퓨터라는 신문물을 접하면서 회사의 사업 방향이 극적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쓰러져가는 회사의 경영상태를 지켜보며 자신에게 경영자의 자질이 없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으로 살아가던 그 때 우연히 한 PC잡지를 보다가 눈이 번쩍했다. 그 잡지에는 컴퓨터라는 기계를 사용하면 경영에 필요한 재고관리부터 판매나 지입/출입 관리 등 그 동안 사람이 하는 작업으로 오류나 문제가 많았던 부분들이 모두 해결되고 경영자는 오로지 경영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경영실적을 개선할 수 있다는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문구였지만 그 악화되어 있는 경영상태를 책임져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이 바로 자신의 얘기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솔깃한 내용이었다.

   
[KOEI 홈페이지]
이미지 - http://www.koei.co.jp/koei_home.html

하지만, 이미 사업을 일으키면서 있는 돈을 다 쏟아 부었고 그나마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상황에서 당시 기준으로 30만엔(지금의 기준으로도 30만엔은 고가)에 해당하는 컴퓨터(마이컴이라 불림)를 살 수는 없었고 너무나 갖고 싶기는 한데 돈은 없고 그렇게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보던 그의 아내 에리카와 케이코가 중고차 한 대 값에 해당하는 컴퓨터를 사주었다고 한다. 에리카와 케이코는 남편이 실의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워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끼고 아껴 모은 적금을 해지하고 남편의 30세 생일에 선물로 사준 것이다.

나중에 어느 인터뷰에서 이 날을 기억하며 처갓집이 부자였다라고 웃으면서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처갓집에서까지 돈을 빌려 했던 사업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하던 당시에 적금까지 깨서 컴퓨터를 사준 아내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지 실제로 아내가 돈이 여유가 있어서 선물을 해준 것은 아니다.

   
[KOEI 경영진]
이미지 - http://www.koei.co.jp/company/profile/

그렇게 뒷바라지와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아내 덕분에 지금의 KOEI가 건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리카와 케이코는 물심양면으로 그의 남편인 에리카와 요이치를 도와 KOEI라는 회사를 일구었다. 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는 KOEI의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남편인 에리카와 요이치는 KOEI의 최고 고문직을 맡고 있다.

아내의 눈물 나는 지원 덕분에 값비싼 컴퓨터를 손에 넣기는 했지만 에리카와 요이치는 처음 만져보는 컴퓨터라는 물건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지원해준 아내의 응원덕분에 그렇게 고가의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값어치 없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직접 개발해보기로 마음먹고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문과 출신이기는 했지만 수학과 역사를 좋아했던 그의 성격상 금세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고 프로그래밍을 독학하면서 회사 경영에 필요한 공정관리나 수주관리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고 사업이 어려워진 것이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는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에리카와 요이치는 제대로 된 재고관리나 재무, 회계 등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을 직접 개발해나가며 개선책을 찾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경영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다(그런 일은 PC잡지의 광고문구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남는 시간에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로 시작한 게임을 개발하는 일이 더 즐거웠다. 고가의 컴퓨터를 사준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주식 투자를 소재로 하는 ‘투자 게임(1980)’을 시작으로 원래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에리카와 요이치는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들을 만들었는데 ‘가와나카지마 전투(1982)’와 같은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들을 만들어보고 주변에 반응이 좋자 PC잡지에 광고를 내서 판매를 시작했다.

   
[KOEI 명예회장 – 襟川 恵子]
이미지 - http://www.koei.co.jp/company/profile/

당시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판매업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PC잡지에서 광고를 보고 전화주문이 들어오면 한 세트씩 포장해서 보내주는 식의 통신판매업으로 가내 수공업 방식이다 보니 판매단가가 굉장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의 ‘투자 게임’은 소문에 소문을 타고 계속해서 주문이 들어왔다.

생각 외로 반응이 좋자 차라리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이 지금의 KOEI의 시작이다. 에리카와 요이치는 무엇보다 즉각 적인 고객 반응이 돌아온다는 점에서 게임 산업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고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KOEI를 염료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게임제작/판매업으로 회사의 주 업종을 변경했다.

원래 하던 염료 가공하는 주문보다 게임을 주문하는 고객이 더 많아지고 수입도 훨씬 더 많아지자 회사 한 켠에 개발실을 만들어 시작했지만 주문이 점점 더 밀리게 되자 아예 사업의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은 삼국지라는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설립 초기 이후 게임 판매업으로 변경한 때만 해도 본격적인 게임 개발 회사라기보다는 조금은 민망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회사였다.

1982년 ‘나이트 라이프(Night Life)’라는 이름만 들어도 밤 생활의 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성인용 체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나이트 라이프는 원래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했었는데 내용 역시 성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성인용 영화였다. 부부가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소프트웨어 이름은 영화와 같이 ‘Night Life’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나이트 라이프에는 다양한 어른들의 밤 세계 동작들이 구현되어 있으니 이제 막 어른의 세계에 입성한 사람들에게는 무림인들에게 ‘소림무공의종비급’과 같은 무공비급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소프트웨어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잘 팔렸다고 한다.

공동 창업자이자 남편인 에리카와 요이치(襟川 陽一)는 시부사와 코우(シブサワ・コウ)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부사와 코우’는 원래 KOEI에서 쓰던 가공의 인물명이었으나 자사의 결전 시리즈 이후 창업자인 에리카와 요이치의 필명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에리카와 요이치는 ‘시부사와 고’ 또는 ‘시부사와 코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부사와 코우라는 이름은 평소 자신이 존경하던 메이지 시대의 대장성 관료이자 사업가였던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 栄一)’에서 ‘시부사와’를 따오고 자신의 회사 KOEI의 ‘코’를 따와서 ‘시부사와 코우’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900년대 초기 대한제국에서 발행 된 제일은행권에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을 만큼 당시 일본에서는 유명한 경제인이자 정치인이었다. 일본의 은행 설립뿐만 아니라 철도, 해운, 제조업, 무역회사 등 일본 경제 거의 대부분에 관여하여 500여개가 넘는 기업을 세워 일본 근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기업가로 꼽히고 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유투브(/watch?v=_zeh4OkvuCA )

아마도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고 게이오대학의 상업학부를 졸업한 에리카와 요이치에게는 누구보다 남다른 존재로 각인됐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명을 사용하며 활동하던 KOEI의 공동 창업자인 에리카와 요이치는 KOEI의 대표로서 공동창업자로의 역할이 필요할 때는 본명이었던 에리카와 요이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게임 개발에 총괄 프로듀서로서 역할이 필요할 때는 시부사와 코우라는 이름으로 개발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중생활을 했다. 에리카와 요이치는 일본에서 ‘일본의 시드마이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데 시드마이어처럼 본명이 아닌 필명(예명)을 쓰는 것도 그렇고 일찌감치 게임 산업을 시작하여 현재 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점 등 여러모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문명 시리즈로 ‘시드 마이어’의 본명은 ‘시드니 K. 마이어’이다. KOEI의 초기 게임들을 보면 총괄 프로듀서나 디렉터 이름에 ‘시부사와 코우(KOU SHIBUSAWA)’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시부사와 코우는 실존인물이지만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특정 누군가를 지칭한다기보다는 팀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시부사와 코우]
유투브(watch?v=N2INjx7FM3c)

세간에는 시부사와 코우에 대한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지만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나타난 적은 없었던 신비의 인물로 KOEI의 간판 게임인 삼국지 시리지를 비롯하여 대항해시대, 징기스칸(원조비사), 신장의 야망 시리즈 게임들을 개발 총괄했던 유능한 개발자였다. 그러던 중 KOEI의 신작 ‘결전’ 이라는 게임 발표회에 그토록 궁금해하던 시부사와 코우가 직접 발표를 한다는 내용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시부사와 코우는 오랜 세월 정체를 밝히지 않고 활동하다가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결전 게임의 발표회장 자리에 모여있던 기자와 관계자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 유명한 게임들을 전두지휘하며 개발을 총괄했던 시부사와 코우의 정체가 자신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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