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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게임별곡
[게임별곡] 80년대에 15만원…그래도 팔린 KOEI ‘삼국지’KOEI, ‘삼국지’ 성공으로 전문 개발사 발돋움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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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6  15: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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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
유투브(watch?v=yFapMmzeGWE)

지금의 KOEI(코에이)를 있게 한 전설의 명작 게임을 꼽으라면 누가나 주저 없이 ‘삼국지’ 게임을 꼽는다. 그만큼 KOEI의 주력 콘텐츠이자 간판 게임으로 자리잡은 삼국지 게임은 원래 만들어질 계획이 없었다. 에리카와 요이치 창업주가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다 보니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에리카와 요이치는 애초에 일본 역사를 소재로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었고 신장의 야망 시리즈가 그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고작해야 일본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전체 다수라기보다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마니아층을 기준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보다 확장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역사적 소재가 필요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만화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를 바탕으로 삼국지의 인기가 높아져 있는 시대였다. 오다 노부나가 만큼 관우, 장비도 유명했다. 게다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심지어 동남아 일대에까지 삼국지는 광범위한 지역에 인기를 얻고 있는 공통의 소재였다. 에리카와 요이치가 찾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국가와 신념, 종교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어느 나라에나 범용적으로 접근하는데 문제가 없는 인기 아이템. 그것이 ‘삼국지’였다.

   
[삼국지 1]
유투브(watch?v=eZX95DA-H1U)

삼국지는 엄연히 중국의 역사이고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거의 중국인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중국인이지 그 당시에는 여러 민족의 집합이었고(지금도 중국은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 있지만) 지금의 중국과는 또 다른 별개의 중국으로 취급될만큼 현재의 중국정부와 얽힌 것이 거의 없다. 중국과 일본은 한 때 전쟁까지 불사할만큼 껄끄러운 사이였고 지금도 정치적으로 완벽한 친화관계라 보기에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삼국지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인다. 한국이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대놓고 거론하며 찬양하기 껄끄럽고 일본 역시 ‘이순신’을 대놓고 찬양하기 껄끄럽지만 두 나라 모두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동탁, 원소, 손권, 제갈량 등 수도 없이 많은 삼국지의 인물들을 거론하며 찬양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똑같이 ‘이미 지나간 역사’라 하더라도 국가간의 역사적 이해관계에 얽혀있었던 적이 있었는가 아닌가에 따른 또 다른 문제에서 삼국지는 완벽히 자유롭다. 역사를 좋아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일에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서 삼국지는 만들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신장의 야망 (1988)]
이미지 - https://news.denfaminicogamer.jp/projectbook/koei

그렇게 1985년 전설의 삼국지 1편이 발매되었다. PC8801을 시작으로 X1turbo, MSX1/2, FM7 등 발매 당시 일본의 주류 컴퓨터 기종으로는 거의 다 이식되었고 IBM PC(현재 PC)와 아미가 버전은 물론 콘솔 게임으로도 출시되었는데 닌텐도의 패미콤과 슈퍼패미콤 버전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되었다. IBM PC판은 당연하지만 영문판으로 발매되었는데 국내에 유통되었던 삼국지 게임도 영문판인 이유이다. 영문판의 이름은 로맨틱하게도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이다. 그래서 게임 실행파일 이름이 rtk.exe였고 삼국지 2는 rtk2.exe였다(rtk.com 이었나?).

시리즈 첫 작품이라 그런지 기획적인 부분과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 점이 많지만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다. 첫 출품과 동시에 소비자 가격을 14,800엔이라는 엄청난 고가로 책정했는데, 한국 돈으로 거의 15만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게임 타이틀 하나에 15만원이라는 것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엄청난 고가다. 그것을 무려 35년전에 그 가격으로 책정했다니 당시에 14,800엔이라는 출시 가격에 놀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KOEI의 또 다른 게임 신장의 야망은 그것 보다는 싸게 출시했는데 일본의 역사도 아니고 옆 나라 중국의 역사 게임을 더 비싸게 판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에리카와 요이치(좌) / 에리카와 케이코(우)]
이미지 - https://news.denfaminicogamer.jp/projectbook/koei

이 놀라운 가격은 KOEI의 공동창업자이자 에리카와 요이치의 아내였던 에리카와 케이코의 결정이었다. 그 당시 에리카와 케이코는 가격 결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게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도 10만엔이나 하는데 그 정도로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라면 14,800엔은 받아야 한다”라고 맞받아 쳤다. 1985년에 15만원이라는 돈은 일본에서도 엄청나게 큰 돈이었고 그것을 게임 타이틀 하나에 쓰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처음 가격은 제안했던 에리카와 케이코는 유통사를 직접 찾아 다니며 협박과 회유를 통해 14,800엔이라는 가격에서 1엔도 깎아 줄 생각 없고 그 가격 그대로 소비자가로 정하기로 했다면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그 가격에는 팔 자신이 없으니 계약을 파기하자는 협박과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비난과 충고가 쇄도했다. 정작 공동 창업자이자 남편이었던 에리카와 요이치는 회사가 이 지경으로 난리가 난 상태에서도 마치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차분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에리카와 요이치는 애초에 KOEI라는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자신은 실무를 담당하고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이나 자금 관리는 아내인 에리카와 케이코가 맡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일에 힘쓰는 것 보다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이전 염료 사업을 하면서 익히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KOEI PRESENTS]
유투브(/watch?v=X9dTSPyIPZk)

세간에는 ‘KOEI PRESENTS’라는 말 대신 ‘KOEI PREMIUM’이라는 비아냥까지 나돌았다. 이 때 여장부 기질이 다분했던 에리카와 케이코가 전면에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다(현재는 KOEI 명예 회장). 전 세계를 둘러 보아도 삼국지라는 엄청난 인기를 지닌 컨텐츠를 게임으로 개발한 곳이 없다. 이것이 안 팔릴 리가 없다.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이미 신장의 야망 출시로 유명해진 KOEI였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 하는 심정으로 유통사들은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아.. 이쯤에서 KOEI도 문을 닫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유통사들은 삼국지 게임을 출시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이해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 삼국지 출시 이후 확실해졌다. 14,800엔이라는 미친 가격에도 게임이 팔리고 있었다. 그것도 서서히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었다. 삼국지는 확실히 인기 콘텐츠였고 그것을 컴퓨터에서 게임으로 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이 직접 삼국지의 세계에서 명령을 내리고 전쟁을 치르면서 자신의 결정 하나하나가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가치에 14,800엔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에리카와 케이코의 14,800엔 확신은 맞아 떨어졌고 역사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재미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렇게 삼국지의 첫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출시하고 KOEI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게임 개발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만약에 삼국지의 가격을 일반적인 타이틀처럼 저렴하게 책정해서 마진을 줄였다거나 가격은 고수하더라도 삼국지만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더라면 삼국지의 첫 작품은 출시와 동시에 외면받고 제2의 아타리 쇼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리카와 케이코는 남편 에리카와 요이치가 삼국지 게임을 개발하는 동안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았고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역사를 좋아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노력과 수고를 저가에 책정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삼국지의 성공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시장 확대를 확신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2편 개발을 서둘렀다. 1989년 삼국지 2가 세상에 등장하자 다시 한 번 삼국지 2편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섰다.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한참 뒤에야 정식수입이 되어 판매량이 저조했지만 동시대에 불법복제 유통으로 이미 컴퓨터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삼국지 2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다만 초기 버전은 영문판이라 한글판은 한참 뒤에야 구할 수 있었지만 영문판 삼국지라도 사람들은 밤을 새며 했다. ‘유비의 이름이 영어로는 Lui Bei 구나..’ 하면서 대충 이름을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시리즈 최초로 일기토가 도입되어 장수의 능력치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고 이것은 곧 ‘인재’라는 부가적 콘텐츠가 되어 현재까지도 삼국지 게임은 어떤 인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적재적소에 어떤 인재를 등용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삼국지 2]
유투브(watch?v=8SYSt4QAzjc)

14,800엔 이라는 놀라운 가격행진은 계속 이어졌고 삼국지 1편과 다르게 2편에서는 가격에 대해 불안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1989년 삼국지 2가 발매되었다. 영문명은 이전에 이어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II’였다. 여전히 가격은 14,800엔이라는 고가였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입 소문을 타고 삼국지라는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삼국지를 좋아하는 누구라도 꼭 해봐야 될 게임이 되어 있었다. 삼국지 2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본 게임으로 삼국지 1 때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국내에서도 PC통신이나 지하상가 등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 2를 즐기면서 처음으로 삼국지 게임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삼국지 2 게임은 그 당시 삼국지를 소재로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 비교할 게임이 없어서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삼국지 2는 삼국지 1 때와는 다르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KOEI를 당당히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로 올려놓은 게임이 되었다. 특히 전작에 비해 다소 아쉬웠던 부분들이 대폭 개선됐다. 외교와 같은 부분이 강화되었고 장수들도 전작에 비해 대폭 증가하여 300여명이 넘는 352명의 장수가 등장한다. 삼국지 소설에서 봐왔던 웬만한 장수는 다 등장하는 셈이다.

게다가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는 신 군주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 수 있었는데 삼국지 2편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신 군주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신 군주 시스템이 환영을 받았던 이유는 유비나 조조와 같이 이미 알고 있고 유명한 인물을 대신해서 삼국지의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캐릭터로 유비나 조조에 맞서 싸워보는 또 다른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으로 무력이 엄청 높은 장수를 만들기도 하면서 관우와 여포와 일기토를 해보기도 하고 지력이 높은 군주나 매력이 높은 군주를 만들기도 했었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정부의 교육용 PC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IBM PC를 전면적으로 지원하는 육성 정책이 있었는데 각 학교마다 컴퓨터실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기종은 8088, 8086 CPU의 XT 컴퓨터가 대다수였고 값 비싼 80286 AT 컴퓨터는 1대 정도 있거나 없는 곳도 많았다. 필자의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에는 XT 컴퓨터 1대만 배정되었다). MSX 시대에서 16비트 시대로 넘어가면서 IBM PC호환 기종이라는 이름으로 조립식 컴퓨터들이 성장하기 시작한 때도 이때쯤이다. 처음 컴퓨터를 사면서 같이 끼워주는 게임으로 삼국지 2가 유명했는데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IBM PC 게임을 유통하는 유통사가 없었던 시절이라 사실 돈 주고 구입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에 정식 유통을 하는 ‘동서게임채널’이 1986년에 설립되었으나 초기에는 주로 미국의 일렉트로닉 아츠, 루카스 아츠(둘다 아츠네?), 시에라 온라인, 오리진 등의 미국 게임이었고 후에 창업 된 SKC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삼국지를 개발한 KOEI의 게임이 한국에 정식 유통된 것은 ‘BISCO’라는 유통사에 의해서였는데 1992년 설립되어 삼국지 2 한글판을 정식 발매하기도 했으나 이미 삼국지 1, 2, 3는 불법복제로 전국에 퍼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삼국지 2 한글판을 정식 발매했어도 정작 판매량은 좋지 않았다. BISCO는 설립 이후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꾸준히 KOEI의 게임들을 한글화 하며 다양한 게임들을 출시하는 등 2000년까지 한국 코에이코리아가 설립되어 KOEI가 직접 한국에 게임 유통권을 회수하기 전까지 사업을 진행했다.

   
[RPG만들기 2000 - BISCO]
이미지 - http://www.yes24.com/Product/Goods/197426?scode=029

BISCO의 설립자인 이지영 사장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중 KOEI의 경영진과 친분 관계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KOEI의 설립초기부터 게임 개발 출시과정과 발전하는 모습을 일본에서 직접 보았는데 삼국지와 같은 역사 게임과 대항해 시대와 같은 게임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한국에 돌아와 1992년 BISCO라는 코에이 게임 전문 유통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지영 사장은 남편이 게이오대학에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 이수하던 중 옆에서 지켜보다가 경영학에 뭔가 재미를 느껴 남편이 다니던 대학에 등록하여 MBA과정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 시절 남편이 잠시 시간 날 때 마다 즐기던 게임이 삼국지와 신장의 야망이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하는 게임을 만든 회사 KOEI가 게이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호기심에 직접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KOEI의 창업자 부부와 친해졌다고 한다.

당시 KOEI는 아직 크지 않은 회사였고 무엇보다 KOEI의 안주인인 에리카와 케이코는 게이오 출신에 같은 여성이었던 이지영 사장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사업을 물색하던 중 KOEI에서 연락이 왔고 한국에 KOEI의 게임들을 판매해보는 것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출시한 게임은 삼국지 2 한글판이었는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미 시기가 한참 지난 뒤라 판매량은 극히 저조하여 약 4,000장 정도 판매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 포기하지 않고 철저하게 유저층을 공략하여 96년도에 출시한 삼국지 5는 시리즈 넘버링 5에 맞게 5만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에서 패키지 게임으로 5만장 판매는 적지 않은 수치이다. 어렵게 시작한 한국에서의 게임 유통사업과 일본에서는 기록적인 판매를 달성중인 KOEI의 삼국지 게임은 양국간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렇게 삼국지 III가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PC는 물론 오락실에까지 진출했던 최초의 PC게임으로 기록 되었던 KOEI의 삼국지 3 이후 삼국지는 전 국민 게임이 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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