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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별곡] ‘페르시아의 왕자’ 위해 동생은 구르고 달렸다동생을 모션 배우로 사용해 만든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 비하인드
정리=박명기 기자  |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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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8  14: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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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영화]
유투브(/watch?v=rqzTcd7iHc4)

조던 메크너는 한 때 꿈이었던 영화 각본 작가의 꿈을 정말로 이루게 되어 게임 개발자 중에 자신의 게임을 영화로 만든 몇 안 되는 개발자로 이름을 올렸다. (예를 들면 윙커맨더라든지..)

젊은 친구들은 페르시아의 왕자를 영화로 기억할 것이고 그보다 더 연배가 있는 분들은 동명의 게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286 PC 전후로 컴퓨터를 접해 본 분들이라면 거의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한 두 번은 해봤을 정도로 당시 PC 구입한 친구 들 중에 이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게임 하나로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이룬 조던 메크너는 어릴 적부터 영화 각본 작가를 꿈꾸던 것만큼 각본과 시나리오 쓰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버릇처럼 남아있는 그의 기록과 관련 된 일 중에 유명한 글은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페르시아의 왕자와 그 속편 페르시아의 왕자 2를 기획 준비하던 때까지의 일도 빠짐 없이 기록한 일기이다. 개인의 일기처럼 담담하게 개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이 글은 책으로도 발간되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watch?v=wKgLfqOVHco)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하던 당시 조던 메크너의 동생 데이비드(David) 메크너는 형에게 붙들려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리고 넘어지고를 반복해야 했다. 가라데카 게임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열악한 개발 환경에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일일이 옮기는 작업을 해야 했지만 가라데카의 성공 이후 조금은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는지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개발할 때는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캠코더를 준비했다. 그 덕분에 동생 데이비드 메크너는 매일 아침 불려나가 페르시아의 왕자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할 모션 배우로 지정 되어 뛰고 달리고 또 뛰고 달리고 다시 뛰고 달리고를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는 제대로 다녔나?)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watch?v=wKgLfqOVHco)

당시 기록 영상을 보면 페르시아의 왕자 캐릭터의 모습이 겹쳐 보일 정도로 캐릭터와 똑같은 포즈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고 달리고 넘어지는 조던 메크너의 동생 데이비드 메크너의 처절하고도 안쓰러운 영상을 볼 수 있다.

조던 메크너의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나 당시 기록 영상들을 보면 언뜻 보기에는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굉장한 열의로 두 형제가 합심하여 게임 개발에 몰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조던 메크너는 이 시기에 갈팡질팡하며 갈등하고 있었다.

게임 개발에 3년이 넘는 기간이 걸린 것도 이유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게임 개발 3년이 넘게 걸린 것은 당시로서도 꽤 긴 시간이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직접 촬영한 기록 영상을 일일이 편집하여 하나의 컷 장면을 다시 컴퓨터로 옮겨 애니메이션처럼 만드는 기법으로 게임 개발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3년씩이나 걸릴 일은 아니었다. 꽤나 지루하고 반복되는 작업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렇다기 보다는 조던 메크너 개인적인 고민으로 인해 게임 개발기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당시 조던 메크너는 본격적인 게임 개발자로서의 각오와 다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꿈이었던 영화 제작과 각본 작가로 가기 전에 장비와 학비 마련을 위한 방편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해볼 겸 잠시 게임 개발을 시작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와 왕자 게임 개발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고민도 깊어갔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watch?v=wKgLfqOVHco)

게임 개발 기법 자체가 수작업에 의존한 부분이 더 많다 보니 아무래도 반복되는 작업에 지루하고 지칠 수 있기는 하지만 조던 메크너가 지루해하고 지쳤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인 영화 제작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은 불안감과 답답함이 그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이 게임 개발의 열정도 사그라지게 할 정도였다. 그의 개발일지를 보면 중간중간에 당시의 고민들이 자주 보인다.

조던 메크너의 가장 큰 고민은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 할 즈음에 그 동안 영화의 각본 작가로 준비하던 작업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헐리우드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헐리우드의 여러 감독에게 조던 메크너의 시나리오가 소개 되었고 크랭크 인 직전까지 영화 제작 계획이 진행되었다. 영화 제작이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한 것 들떠있던 조던 메크너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자신의 일생일대의 꿈이 지금 이루어져가는 듯 했다.

그렇게 게임개발을 먼저 시작했지만 뒤이어 찾아온 영화제작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조던 메크너는 더욱 더 각본 집필에 몰두했고 점점 게임 개발에는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영화제작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고 종종 뒤엎어 지는 경우가 있는데 1988년 결국 영화 제작은 취소되었다.

자신의 꿈이 바로 눈 앞에서 이루어질 것 같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보여지다가 한 순간에 그 꿈이 와장창 주저 앉아 허무하게 사라졌을 때의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것이다. 그 상실감이란 이루 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의 허무함과 상실감으로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일 것인데 조던 메크너 역시 그 수렁에서 한 동안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내야 했다. 결국 엎어진 영화 제작과 함께 이미 시작해 놓은 게임 개발 일도 다 때려치울까 생각했던 메크너는 어느 날 자신이 기록해 놓은 개발일지들을 보면서 깊은 사념에 잠겼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watch?v=rqzTcd7iHc4)

애초에 하나라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영화제작과 게임개발 일을 동시에 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자신의 욕심이었고 하다 보면 둘 중에 하나라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비겁한 도피처 마련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조던 메크너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게임 개발 일을 벌려 놨지만 정작 마음은 영화 제작에 가 있는 터라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처음부터 다시 수습하기에는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긴 해도 시작한 일을 마무리는 지어야 했다. 예전에 짜놓았던 소스 코드를 들여다 보면서 기획단계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게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추가 할 것과 정리할 것들을 나열해서 그림과 표로 간단하게 도식화 했다. 그런 내용들은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에 보면 잘 나와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watch?v=rqzTcd7iHc4)

조던 메크너의 페르시아 왕자 개발일지 책을 보면 게임 개발자의 개발일지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일기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더 사실적이고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주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공감이 가기도 한다. 페르시아 왕자라는 게임을 개발하는 내내 20대의 조던 메크너는 어떤 고민을 했고 자신의 미래 어떤 부분을 불안해 하였으며 자신이 현재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에 대한 고민들이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적혀있는데, 30년 전에도 지금처럼 신규 산업 직종에서의 고용 불안이나 후배들의 추월에 밀리는 선배들의 걱정 같은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에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들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watch?v=wKgLfqOVHco)

개발일지와 함께 조던 메크너 개인 홈페이지에 가면 게임 개발 당시의 기록영상들을 볼 수 있는데 실제 게임에서 구현 된 모습을 보면 감흥이 새로울 것이다. 게임산업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변곡점을 지나왔는데 조던 메크너는 언제나 그 과정에 함께 서 있으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시도를 했었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4년 만들자마자 대성공을 거둔 가라데카 게임을 시작으로 그 후속작 페르시아의 왕자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게임을 만든 성공한 개발자이지만 초년 시절에는 늘 고민과 불안이 가득했다.

   
[조던 메크너]
http://germanlinux.blogspot.com/2012/04/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게임이 드디어 1989년 10월 Apple II 기종으로 출시됐지만 판매량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84장에 불과했다. 조던 메크너는 역시 게임 개발자는 자신의 길이 아닌가 싶은 후회도하고 가라데카는 어쩌다 운 좋게 성공한 게임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저조한 판매량은 게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Apple II 하드웨어 성능의 문제이기도 했는데 페르시아의 왕자가 출시된 1989년 말에는 이미 Apple II의 사양이 너무 뒤떨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IBM PC가 대세를 장악하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IBM PC 환경에 맞게 그래픽과 사운드의 리뉴얼 작업을 했다. 그리고 원판 출시 1년 뒤인 1990년 9월 IBM PC / MS-DOS용으로 새롭게 출시 된 페르시아의 왕자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일 것이다. IBM PC용으로 이식 된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한층 더 부드러운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돋보이면서 게임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참고로 Apple II 용으로 개발했던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의 소스 코드가 공개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쯤 구경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속된 말로 대박이 터진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 뒤로도 나날이 인기를 더해갔다. 근자에 비교될만한 게임이 없었을 정도로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덕분이었다. 당시의 게임들 대부분이 캐릭터들의 모션은 기껏해야 이동 방향에 따른 4장 또는 8장 정도의 그림이 전부였던 반면 페르시아의 왕자는 초당 15~16장이 넘는 애니메이션 덕분에 실제 움직임과 비슷할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다.

그렇게 조던 메크너는 가라데카 게임과 페르시아의 왕자 단 두 개의 게임으로 성공한 게임 개발자가 되었다. 물론 중간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으면서도 실패한 ‘더 라스트 익스프레스’ 같은 흑역사도 있었지만 2010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가 개봉되면서 영화의 각본을 맡아 자신의 일생 일대의 꿈을 다 이루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그 이후로도 시리즈화 되어 리부트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1,700~2,000만장이 판매되면서 각종 게임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성공한 게임 개발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던 메크너의 일대기는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가면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동생 David Mechner]
https://www.pragmatrading.com/what-we-do/

참고로 페르시아의 왕자의 실제 게임 캐릭터 역할을 맡아 모션 촬영 배우로 활약했던 조던 메크너의 동생 데이비드 메크너는 이제 어엿한 한 회사의 CEO가 되어있다. 회사의 중역들이 자기 회사의 CEO가 예전에는 형에게 끌려 다니며 페르시아의 왕자 역할을 위해 뛰고 구르고 넘어지고 했던 것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게임톡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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